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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작가 Apr 04. 2024

망했다고 생각될 때 보면 좋은 책

그림책-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가지런히 줄 맞춰 있는 수박밭 한가운데에 수박무늬 바지를 입고 있는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누군가 수박 한 통을 훔쳐가기 전까지, 앙통의 수박밭은 완벽했습니다. 동그랗고 탐스런 수박들이 줄 맞춰 있는 수박밭에서 한 개의 수박이 사라졌습니다. 수박이 있던 자리는 움푹 패어있고 앙통의 눈에는 그 빈자리가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이죠. 앙통은 사라진 수박생각만 합니다. 밤낮으로 사라진 수박생각만 하던 앙통은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도둑맞은 수박이 수박밭 옆에 있는 목화밭으로 굴러가는 꿈을 꾸고, 어떤 날은 찬장에 있는 수박을 생쥐들이 갉아먹는 꿈, 또 어떤 날은 훔친 수박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범인이 바로 앙통 자신으로 보이는 꿈을 꿉니다. 그러다가 앙통은 수박밭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서 수박을 지키기로 합니다. 밤이 되면서,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던 앙통은 밤마다 수박밭을 지키는 것도, 악몽을 꾸는 것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모든 걸 잊고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깊은 밤, 수박밭 근처에 사는 길고양들이 나타나서 수박밭을 헤집고 다닙니다. 농기구를 넘어뜨리고 자루의 씨앗을 뿌리고 앙통의 수박밭은 난장판이 되죠. 다음 날 아침, 앙통은 엉망이 된 수박밭을 봅니다. 하지만 도둑맞은 수박의 빈자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앙통의 수박밭은 그냥 수박밭이 아니라 완벽한 수박밭이었습니다. ‘완벽’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흠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완벽’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기준입니다.

어떤 이의 기준에서는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이의 기준에서는 '부족해서 한참 더 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완벽주의자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자기만의 수박밭이 하나씩 있습니다.

살다 보면 크거나 작은 일이 생기고 수박밭에 균열이 생길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면 앙통처럼 자신을 괴롭히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초등학교 내내, 영어학원을 보내지 않았고 다른 과목 학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게 도서관에 자주 갔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우기 힘든 피아노 학원 정도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큰 애가 중학생이 되어 첫 시험을 보고 저의 수박밭에 큰 구멍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낮은 점수를 받고도 더 낮은 점수를 받은 친구도 있다면서 그에 비하면 잘한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수학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성적이 그리 쉽게 올라가는 게 아니었고 다음 시험에도 마주한 점수는 처참했습니다.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어도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기에 그래도 중간쯤은 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구나, 친구랑 놀러 다니고, 핸드폰만 들여다보았구나.' 그렇게 시작된 원인 찾기는 자책으로 연결되었죠.  '진작 수학학원을 보냈어야 했어. 학원도 안 보내고 아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너무 몰랐어. 모두 내 탓이야. 난 무능한 엄마야!' 


 자책과 후회, 분노와 슬픔이 한데 뭉쳐 아이에게 날 선 말들을 하기도 하면서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상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이는 해맑고 장점이 많았지만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멈추었습니다.

그럭저럭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가정의 모습일 텐데,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는, 채워지지 않는 큰 구멍이 자꾸만 크게 보였습니다.  없어진 수박의 빈자리만을 생각하던 앙통처럼 말이죠.

 

앙통은 없어진 수박의 빈자리만을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탐스럽게 잘 익어가고 있는 다른 수박들에 시선을 돌렸다면 어땠을까요? 

 

큰 애는 무엇보다 건강했고 성적이 나쁘다고 기죽어 있지 않고 공부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긍정적인 아이였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중 에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와 잘 지내는 것이 시험성적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죠. 


'인생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말처럼 다른 관점, 다른 태도를 선택하는 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 건 분명합니다. 실패하고 시련을 만났을 때 비관하며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관점으로 그 시기를 보내면서 성장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실수와 실패, 자책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내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부족해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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