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틀에 반죽을 넣듯, 조직에 나를 맞추기
K, 저는 지금 당신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를 쓰기 위해 합정동의 조용한 카페에 있습니다. 벌써 늦은 가을을 넘어 연말의 분위기가 조금씩 반영되었는지, 카페에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캐럴풍의 재즈가 흐르고, 주변 사람들은 따뜻한 커피를 나눠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6년 전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무렵 연수원에서 입사 동기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당신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마른 우물에 다시 물이 올라오게끔 마중물을 붓고 이후 펌프질을 하여 되살리는 것과 같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다 보면 물이 솟아오르듯, 글 또한 지속해서 써야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들려드리고 싶던 이야기와 먼 현재의 신변잡기에 대하여 너무 길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인제 그만 제가 지난번 편지에서 언급한 첫 번째 조직에서의 기억을 담은 책을 저의 머릿속 책장에서 꺼내 먼지를 털고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조직이라는 곳, 특히 대기업이라는 곳은 아주 강력한 형태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제공하는 막강한 두 가지의 레버리지: 1) 높은 연봉, 2)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는 해당 조직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와 위기를 극복하며 쌓아온 결과물입니다. 그렇기에 대기업이 보여주는 보수적인 태도와 관료성을 결코 쉽게 비난 혹은 비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은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왔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위기들을 극복하면서 만들어낸 그들의 성공 방정식은 조직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구성원들이 자의적으로 행동하다가 저지를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해주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많은 개개인의 개성을 희생하는 대신 그들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약속해주는 기득권의 사고방식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 느껴지는 적응의 난이도는 모두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러한 기득권의 사고방식에 자기 자신을 철저히 맞춰서 조직 내에서 성공하거나,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이러한 조직에서 가르치는 사고방식에 대하여 반발심을 가지거나 자신의 인생에 만족도와는 별개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처럼 어렵게 기회를 쥔 사람에게 대기업이라는 조직에서 가르치는 기득권의 사고방식은 살면서 좀처럼 접해보기 힘든 귀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 돌아보면 제가 그곳에서 배운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저에게 체계성을 갖춘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내재화할 기회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체계적인 사고방식은 지금의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음을 저는 부정하지 않고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규격화’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이 정의돼 있습니다. 1) 공업 제품 따위의 품질, 모양, 크기, 성능 따위를 일정한 표준이나 격식에 맞게 함, 2) 어떤 사물이나 사상, 여론 따위를 일정한 방향이나 틀에 맞도록 함. 반면에 ‘최적화’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있습니다. 1) 어떤 조건 아래에서 주어진 함수를 가능한 최대 또는 최소로 하는 일. 그렇기에 이 두 단어를 엄밀하게 비교한다면,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상황 또는 조건이 되는 것은 ‘최적화’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 명의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 온전히 만족한다는 것은 자기 인생의 ‘최적화’를 달성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직이라는 곳은 특히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조직은 개개인이 지닌 모든 개성과 특성을 ‘최적화’시켜줄 여유 또는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조직의 탓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시간과 지니고 있던 가치관을 포기하는 대가로 조직이 제공하는 금전적인 편안함을 등가 교환하여 받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조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조직이 지니고 있는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빠르게 흡수하고 이에 맞춰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프로세스에 근거한다면, 조직에 적응한다는 것은 곧 ‘기득권의 사고방식’’과 개인의 가치관이 부합하여 ‘행복한 최적화’를 이뤄내거나, 혹은 개인의 ‘최적화’와 상관없이 조직의 가치관에 적응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 이러한 ‘규격화’된 조직 구성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개인의 인생을 ‘최적화’하는 것에 있어서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다시 접하게 된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과거 인터넷 카페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재테크와 연관하여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관해 물음이 유행을 탈 때, ‘세이노’ (Say No)라는 필명을 쓰던 익명의 부자가 대기업이라는 조직이 지닌 생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대조직에서는 일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 속에 숨어있기가 쉽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기에 능력 배양을 등한시하는 경향도 많다. 가장 한심한 경우는 대조직에서 “얼마의 예산 혹은 매출을 주물렀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으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조직이 일하는 것이지 개인이 일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조직이 부여하는 관성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한 법입니다. 이성적으로는 이러한 생활이 스스로가 지니고 있던 가치관을 갉아먹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매달 들어오는 괜찮은 수입과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여겨지는 지위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긍정적인 피드백은 하루하루 작용하는 강력한 관성으로 자리 잡아 저를 조직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린 순간 저는 무엇이든 시키면 다 할 줄 안다는 3년 차 ‘대리’가 되어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지니고 있던 개인의 목표 또는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도 잊은 채 3년 차 직장인이 된 저에게 주변에서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한 청첩장은 일종의 신호와 같았습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어느덧 당연하다는 듯이 결혼을 하기 시작했고, 다들 그렇게 ‘다음 단계’라고 여겨지는 여정을 위한 신발 끈을 동여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그러한 주변의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는가?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분명 제가 처음에 바라던 삶의 모습은 이러한 것이 아니었고, 원하던 그림과 다르게 사는 지금의 모습은 분명 무언가를 포기했기에 얻은 것이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내면에 잠들어 있던 불씨는 무언가 다시 활활 타오르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생각보다 사소하다고 여겨졌던 것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K, 당신에게 보낼 다음 편지는 아마 하나의 다큐멘터리와 하나의 책에 대한 서평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그 두 가지의 경험이 제 삶의 방향을 바꾸면서 동시에 잠들어 있던 불씨를 깨우는 불쏘시개이자 장작이 되었으니까요. 모쪼록 점점 추워지는 날씨입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