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
- 진실로 하루라도 새롭고자 한다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최근 나에게 가장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주는 K로부터 들은 표현이다. 그는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듣고 '일일신 우일신'이라는 말과 함께 진정으로 무엇을 이루고자 한다면, 어설픈 완벽주의로 포장된 소망이 아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실천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 이야기를 해줬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은 고대 중국의 은 (또는 상) 나라를 개창한 탕왕이 자신의 세숫대야에 적어놓고 매일 아침 세안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잡았다는 표현이다. 그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변화가 아닌, 올바른 방향성을 지닌 변화를 매일 조금씩 이루자고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다짐은 매일매일을 좀 더 긍정적으로 살기 위한 '소망'이 아닌 '실천'으로 이어졌다. 아주 사소한 실천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 기여를 한다면, 그 날은 결코 헛되이 낭비된 하루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다잡는 실천의 연속이었던 탕왕의 치세는 그가 비록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킨 반역자에서 모든 이들이 흠모하는 지도자로 탈바꿈해주었다.
물론 변화는 굳이 공동체 혹은 주변에 거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것과 연관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변화는 스스로에게 만족을 주고, 당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주 소소한 의미만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소소한 만족마저도 이뤄내기 위해서는 당신은 매일매일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가? 무언가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남들이 소비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되든 안 되는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다. 매일매일 조금씩 새로운 방향을 향해 혹은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방향에서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글쓰기가 되었든 사람을 만나는 행위가 되었든, 책을 읽는 행위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나면 이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관성을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습관을 완전히 들여 길들이기 이전까지는 특정한 행위에 대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의지력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면을 찾고 발전해나가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절제와 인내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게끔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