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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x Park Apr 24. 2022

생각의 조각들 20

틈틈이 글쓰기

0. 일어나는 일들에 관하여


단언하건대, 신은 기백 있고 용감한 행위를 할 기회를 줌으로써 되도록 존경받았으면 싶은 자들을 배려하지요. 그러한 행위를 하자면 역경이 필요하오. 키잡이는 폭풍을 겪어봐야 알고, 군인은 싸움터에 나가봐야 아는 법이오. 부가 넘쳐난다면 그대가 가난을 얼마나 용감하게 참고 견딜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대가 박수갈채 속에서 늙는다면, 불패의 인기를 누리는 그대에게 모두가 호감을 느낀다면, 모욕과 수치와 대중의 무례에 그대가 얼마나 꿋꿋하게 버틸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재앙은 미덕에게는 기회 라오. 너무나 큰 행복으로 나른해진 자들, 잔잔한 바다 위에서처럼 나태한 평온에 사로잡힌 자들은 불행하다고 불려 마땅할 것이오... 잔혹한 운명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일수록 더 무겁게 짓누르지요. 멍에는 부드러운 목덜미에는 무거운 법이오.

- 세네카, 섭리에 관하여 중 -


삶은 불공평하다. 이건 자명한 진리다. 당신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삶은 당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그렇다고 세상을 원망하거나, 모든 것을 그저 내려놓은 채 낙담하면서 살아가기에는 햇살은 눈이 부시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늘 싱그럽다.


불운이 당신을 몰아간다고 원망하지 말자. 올바른 길, 괜찮은 길로 가는 삶은 원래 늘 어려운 법이다. 당신이 삶은 원래 쉽지 않음을 인식하고 (특히나 올바른 삶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도 당신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경험이자 훗날을 위한 자산이 될 것이다. 설령 당신을 위한 별의 순간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좋은 것이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자리가 여기까지였구나라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이다.


1. 나에게 주는 휴식 시간


역시 일이 잘 안 풀리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지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줄이고,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 나와의 시간을 가진다. 묵묵히 하루를 보내고, 때로는 멍 때리며 만화책만을 읽다가 다시 또 혼자서 그림이나 전시 등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때로는 모든 것에서 물러나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었으면 한다. 물론 혼자서 훌쩍 떠나는 여행이 최고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것도 쉽지 않은 최근에는 바깥이 아닌 내면으로의 차분한 여행이 어쩌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들을 어떻게 쓰느냐는 온전히 당신이 결정할 일일 것이다.


2. 스토아 철학과 함께하는 휴식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책장에서 먼지 쌓인 스토아 철학자들의 책을 읽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늘 읽지만 가끔은 너무나 무겁다. 그럴 때는 조금 더 여유로운 느낌이 나는 세네카의 글을 읽는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면 좀 더 보람 있는 것인지, 불필요하게 어렵고 귀찮은 개념 등이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마음가짐과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따뜻한 조언이 느껴지는 그의 글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모두가 알지만 쉽게 실천 못하는 깨끗하고 평온한 삶에 대한 비유이다. 


책을 펼치고,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자


3. 담백하게 글쓰기 그리고 담담하게 살아가기


이렇게 조용한 환경에서 담백한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 스스로도 글을 쓰고 싶어 진다. 아직까지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그저 내가 쓰고 싶을 때 그 소회를 풀어내는 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몽테뉴가 수상록을 쓰면서 느꼈을 기분이 어떤지에 대하여 어림짐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에는 자신의 서재에서 여유 있게 생각의 조각들을 풀어내어 배열하던 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머릿속에는 과거와 현재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쫓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있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영광은 은커녕 하루하루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찌할 줄 모르는 가련한 이들 또한 그는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그저 일어나는 세상의 흐름이자 섭리임을 인지한다면, 조금 더 스스로와 나머지 세상에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사고 흐름을 기록하는 것이 그가 생각한 세상과의 타협이었을지도 모른다. 엉겨 붙은 생각들을 잘 가지치기하여 자기만의 생각의 정원을 꾸미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정원에 혹여라도 방문할지도 모르는 방문객들이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분명한 목적보다는 그저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기고자 목표로 한 사람의 글쓰기이자 더 나아가 삶의 방향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다듬다가도, 일상의 번잡함으로 돌아가면 다시 아웅다웅하는 세파의 일부로 돌아갈지도 모르나. 그건 그거대로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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