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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x Park Sep 18. 2022

생각의 조각들 25

틈틈이 글쓰기

https://www.youtube.com/watch?v=FCmDjPl-JkE

Haruka Nakamura - Twilight (2010)


1. 드라이브 마이 카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어. 진실을 지나치고 말았어. 실은 깊은 상처를 받았지, 곧 미쳐버릴 정도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속 못 본 척했어.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수 없었어. 

- 카후쿠, 드라이브 마이 카 - 


한동안 영화라는 여가를 오랫동안 손에 놓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깊은 생각과 감정을 필요로 하는 행위 일체로부터 떨어져 안온한 하루에 머물며 스스로가 좀 먹히는 줄도 모른 체 살아가던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웹서핑을 하던 중 발견한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막막함은 당신을 오랜만에 아주 긴 러닝타임의 영화로 이끌었다.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남자와 무심한 눈빛을 한 여자. 막막함이 느껴지는 풍경.


영화는 상실감으로 무너져 내린 내면의 폐허를 거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폐허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나가고, 그러한 삶의 방식은 그들이 모이는 곳에서 마침내 각자의 '해답'을 찾게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어떤 이는 폐허를 텅 빈 자기 자신에게 들여와 스스로를 만들고, 어떤 이는 폐허로 돌아와 이를 마주 보며 앞으로 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어떤 이는 폐허 또한 결국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을 마침내 인정한다.



2. 감정의 카타르시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극도의 몰입과 감정을 소모하는 기분이었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일견 매우 잔잔한 영화로 보이지만,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로부터 나오는 대사들은 주인공과 이에 감정 이입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괴롭힌다. '너는 너의 진실을 보았는가 아니 있는 그대로 마주하였는가?'라며 말이다. 주인공은 진실을 외면한 대가로 무너진 감정의 폐허를 가슴속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자신만의 그럴듯한 해석으로 잃어버린 아내를 반추하던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한 아내의 진실된 모습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가슴속에 방치하던 감정의 폐허를 마주하게 된다. 


황량한 감정의 폐허 앞에서 마주한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분노, 슬픔,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안고 있는 후회의 감정을 눈물과 함께 드러낸 남자는 마침내 오래된 상처를 꿰매고 그 흉터만을 간직한 채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게 된 그에게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영화는 한 사람이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평온을 얻게 되겠지요.”

바냐 아저씨, 안톤 체호프


 

3.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몹시도 막막하고 아련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상처의 흉터가 때로는 아릴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때로는 비극으로 점철된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아간다는 것. 우리는 분명 조용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라는 것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일까. 


오랜만에 본 영화 속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비극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자문하는 당신에게 노을 진 하늘은 답을 주었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소냐가 바냐 아저씨에게 말한 것처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다만 바냐 아저씨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은 삶의 비극뿐만이 아닌, 삶의 아름다움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의 몫이라고 말하는 듯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당신은 마침내 내면의 감정이 해소됨을 느낀다.


삶은 짜증과 비극으로 가득할지라도,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에게 기쁨 또한 주는 듯하다.


좀 더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해보자. 물론 극적인 비극은 없을지라도 당신은 끊임없이 일상의 짜증과 소소한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냐가 바냐 아저씨에게 말하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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