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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x Park Apr 15. 2023

생각의 조각들 32

틈틈이 글쓰기

https://www.youtube.com/watch?v=5rAdPq0wouQ



 행복은 꿈에 불과하지만 고통은 현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별 있는 사람은 쾌락이 아닌 고통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라고 말했다. 이 명제의 진실은 모든 쾌락과 행복은 소극적인 성질을 띠는 반면, 고통은 적극적인 성질을 띤다는 데 있다. 몸 어디에 작은 상처만 있어도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의식되지 않고, 그 상처의 통증에만 온 신경이 쓰여 유쾌한 기분을 가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뜻대로 진행되더라도 한 가지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계속 그 일만 생각하며 뜻대로 진행되는 다른 더 중요한 일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가 가르치는 것은, 삶의 쾌락이나 안락에 주목하지 말고 오히려 수많은 재앙을 피하려 노력하라는 것이다.

-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1. 사랑과 연애 감정


쇼펜하우어는 결국 사랑이란 유전자를 이어가기 위한 본능이 이끄는 성적 판타지의 발현이라고 규정했다. 우리에게 판타지가 없다면 헌신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인간의 행복은 개개인이 지닌 정신 능력의 크기 - 어쩌면 그 사람의 그릇 - 에 결국 귀결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과 이를 바탕으로 한 연애 감정이라는 것은 결국 지나가는 하나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글을 쓰는 나와 읽는 당신 모두) 그 바람에 휩쓸리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외부 조건이 녹록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수록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꿈을 그리며, 그 꿈에 자신을 투영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필터'는 그 꿈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강력한 효과를 지닌 필터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필터가 없다고 해서 죽지는 않겠지만, 그 필터가 어쩌면 활기를 불어넣지 않을까?


2. 인내하며 기다리는 방향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한 사마의와 관련된 글들을 읽으며, 순리대로 가기 위한 기다림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끊임없이 견제당하며, 말 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조심해야만 했던 그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가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그를 새로운 역적이라 규정하였지만, 그의 삶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살기 위해 역적이 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은 삶의 궤적이라고 느껴진다. 


관직에 나아가는 것도 원해서 나아간다기보다는, 살기 위해 임용되어 일을 시작하고,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되, 자신을 시기하고 위협으로 여기는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책잡히지 않기 위해 늘 자기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했던 그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일생에 걸쳐서 책 잡히지 않으며 올라가야만 했던 그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남의 머리 위에 서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이 지닌 야심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는 결국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해야만 하는 '노예의 삶'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반대로 해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삶을 딱히 원하지 않는 것 같던 사마의에게 관직에서 지속적으로 올라가 일을 한다는 것 - 그것도 당대 사회 분위기상 관직에 나오지 않은 채 명사가 되면 잠재적인 역적 취급을 받던 분위기 속에서 - 은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삶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는 늘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유리한 환경으로 바뀌기까지 기나긴 세월을 참고 견디고 또다시 참고 견디는 삶을 반복했다. 어쩌면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굳이 원하지 않았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과연 자신의 삶이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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