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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명한 투자자 Aug 16. 2021

여보, 그 주식 안 망하는 거 맞아요?

이익 조작과 사기 치는 기업을 미리 찾아냅시다!

다들 알다시피 총보다 펜으로 훔친 돈이 훨씬 많습니다.
- 퀀트로 가치투자하라, p.94, 워런 버핏 -

돈을 잃고 난 뒤, 아내에게 들을 까 봐 가장 무서웠던 말

"여보, 그 주식 안 망하는 거 맞아요? 이번에는 정말 안 망하는 거 맞아요?"


아내가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입니다. 하지만 돈을 잃고 나서 아내에게 정말 듣고 싶지 않았던 말 중에 하나였습니다. 큰 실패 이후에 다시 투자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더군요.


'공부해서 고른 종목이 다시 실패로 이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망할 기업을 미리 알 수는 없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종목을 고르는 방법을 공부하던 중에 우연히 '퀀트로 가치 투자하라(에프엔 미디어, 웨슬리 그레이, 토비아스 칼라일)'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방법이 나와 있었어요.


2001년 12월 2일 파산한 '엔론'이라는 미국 기업이 있는데요. 엔론이 망하기 1년 전에 미리 경고를 날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이었냐고요? 아니요. 코넬 대학교 MBA 학생들이었습니다.(퀀트로 가치 투자하라, p.113)


그들이 어떻게 엔론이 망할 것을 알았을까요? 그전에 먼저 엔론 사건이 뭔지 알아봅시다.


너무나도 유명한 엔론 사건

동영상 2분부터 보시면 빠릅니다.

출처 : https://youtu.be/Mt8a0-77Wfo, 급하신 분은 2분부터 보세요.

엔론은 미국의 우량한 기업으평가받았습니다. 에너지, 원자재, 서비스 회사로 직원이 2만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 경제지 <포춘>은 엔론을 6년 연속 '미국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았다고 하네요.(p.109) 그런데 이 기업이 2001년에 파산합니다. 이유는 분식회계였습니다. 재무제표의 숫자들을 사기 친 것이죠.


조작 확률 계산법, PROBM

엔론은 파산했고 관련자는 처벌받았습니다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주식에 투자한 주주들의 돈이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저의 악몽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어떻게 코넬대 MBA 학생들은 엔론의 파산을 경고했을까요.

(학생들은 MBA 기말 과제로 엔론을 분석한 것이었답니다. 세상에...)

바로 PROBM(조작 확률, Probability of Manipula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알아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켈리 경영대학원의 메소드 베네이시(Messod Beneish) 교수는 1999년 '이익 조작의 적발(The Detection of Earnings Manipulation)'이라는 논문에서 PROBM이라는 방법으로 기업의 재무제표 조작을 탐지하는 기법을 소개합니다. 대학생들은 이를 엔론에 적용했던 것이죠.

표본 외 실험에서 PROBM 모형은 기업의 조작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대략 50%를 적발할 수 있었다. 모형은 1998 ~ 2002년 발생한, 세간의 이목을 끈 조작 사건 17건 중 12건을 사전에 적발했다.

- 퀀트로 가치투자하라, p.106 -


8명의 선수들

모형은 8개의 지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제 선수들을 대충 알아보겠습니다.(p.107 및 논문 참조)

DSRI(Days Sales in Receivables Index) : 매출채권과 매출액 간에 균형을 알아보는 지수입니다. 이 비율이 커지면 경영진이 매출액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GMI(Gross Margin Index) : GMI가 1보다 크면 매출총이익이 감소한 겁니다. 매출총이익의 감소는 회사의 전망에 대한 부정적인 신호라네요. 미래 전망이 나쁜 기업일수록 회계 조작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AQI(Asset Quality Index) : 자산의 품질을 알아보는 지수입니다. 향후 혜택이 불투명하거나 형태가 없는 무형자산이 총자산에서 얼마나 되는지 나타낸답니다.


SGI(Sales Growth Index) : 매출액의 성장 지수입니다. 매출 성장이 조작을 암시하지는 않죠. 하지만 이런 기업은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이때 경영진은 이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재무상태표를 조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DEPI(Depreciation Index) : 감가상각비 지수입니다. 이 비율이 1보다 크면 자산이 보다 천천히 감가상각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네요. 같은 산업의 다른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더 낮은 감가상각률을 사용하는 기업은 이익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SGAI(Sales General and Administrative Expenses Index) : 판매비와 관리비 지수입니다. 늘어나는 판관비는 경영진이 높은 보수를 챙겨 회사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답니다.


LVGI(Leverage Index) : 부채비율입니다. 이 비율이 1보다 크면 부채비율이 늘어났다는 것이죠. 이때 기업이 부채 약관을 어겼을 가능성도 커진답니다. 더불어 회계 조작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죠.


TATA(Total Accruals to Total Assets) : 총자산 대비 총 발생액 비율을 보여주는 지수입니다. 사기와 이익 조작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현금흐름과 일치하지 않는 발생주의 회계를 좋아한답니다.(p.96) 현금이 들어오고 나가게 하는 행동은 올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현금이 들어온 것은 작년이나 내년에 발생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때 현금의 유출입이 없는 수익과 비용 항목(ex, 매출채권)들을 회계에서는 발생액(Accruals)이라고 합니다.(CFO강의노트, p.278)

발생액이 증가했다는 것은, 현금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 장부상의 자산이나 이익은 커졌다는 것이겠죠. 자연히 이익 조작의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아래 표는 1989년 이전의 이익 조작 기업 50개를 표본으로 8개 지표들의 평균값을 비교한 것입니다.

출처 : "The Detection of Earnings Manipulation", Messod D. Beneish, p.23, Table 2

각 지표의 수치가 이익 조작 기업 평균에 가까울수록 조작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모형은 위의 8개 변수에 가중치를 두어서 계산합니다.
PROBM = -4.84 + 0.92*DSRI + 0.528*GMI + 0.404*AQI + 0.892*SGI + 0.115*DEPI - 0.172*SGI + 4.679*TATA - 0.327*LVGI

- 퀀트로 가치투자하라, p.108 -


엔론의 결과는?

'퀀트로 가치투자하라'에 나온 엔론의 2000년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퀀트로 가치투자하라', p.111, 표 3.3 일부 발췌

PMAN은 PROBM 모형의 결과값을 정규분포 확률로 변환한 값입니다. 100%에 가까울수록 조작 확률이 높다는 말이죠.


저는 결과를 직접 계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엑셀로 조작 확률 계산기를 만들었죠. 책에 나온 값과 일치한다면 계산기를 제대로 만들었다는 뜻일 겁니다.

결과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계산식은 모두 논문과 책을 참고했기 때문에 틀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엔론 재무제표에서 숫자를 잘못 가져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0.9%만 틀렸으니 큰 오차는 없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는 기업의 이익 조작 확률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유명한 회계 부정 사건도 예측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두 가지 사례를 계산해봤습니다. SK글로벌과 대우조선해양의 회계부정사건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의 능력으로는 국내의 이익조작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사례1] SK글로벌

뉴스를 보면 2001년 결산장부에 조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02년에 나온 감사보고서를 가지고 계산해보았습니다. 연결기준, 단순기준 모두 해봤죠.

2002년 연결감사보고서 기준

SGAI 지표(매출액성장지수), TATA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나머지는 이상이 없습니다.

2002년 감사보고서 기준

SGAI, TATA에만 경고등이 들어오고 나머지는 이상이 없습니다.


[사례2] 대우조선해양

출처 :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2/16/2021021602547.html

자료를 보면 2012년 ~ 2014년까지 분식회계를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연결 재무제표 기준
대우조선 해양 재무제표 기준

2012년에는 GMI, SGAI, TATA에 경고등이, 2013년에는 GMI, TATA에 경고등이 들어왔습니다. 2014년에는 TATA에만 경고등이 들어온 것 말고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국내 사례에서 조작을 확실히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구독자 이벤트로 계산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리 밝힐 수 없었습니다. 연휴 내내 붙잡고 계산해봤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표본 외 실험에서 PROBM 모형은 기업의 조작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대략 50%를 적발할 수 있었다.

 - 퀀트로 가치투자하라, p.106 -

책에서는 50%는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너무 아쉬운 것은 국내의 대표적인 이익 조작사건을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SK글로벌 사례는 엔론 사태와 유사한 사건으로 평가함에도 말이죠.


PROBM의 한계점?

제가 PROBM 모형의 한계를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단순히 생각해봤습니다.

모형은 대체로 전년도와 올해를 비교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장부를 조작했더라도 작년보다 수치를 적게 기록한다면 PROBM의 레이더망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내 사례를 밝히지 못해 힘이 빠지긴 합니다. 하지만 아주 허무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계산기를 만들었다는 점, 모형의 한계점을 확인했다는 것을 연구의 성과로 생각합니다.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요.

SK글로벌과 대우조선해양 사례가 밝히지 못한 50% 확률에 걸렸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좀 억지입니다만, 다른 사례는 잡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못 잡아낸다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매수하려는 주식의 조작 확률이 높게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돌다리를 두드려서 나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산기를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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