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약국 인터넷 선에 문제가 생겨서 카드 단말기를 전화선으로 연결해 사용한 적이 있었다. 순식간에 결제가 완료되는 인터넷 선과는 달리, 전화선은 약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 몇 초 안 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손님이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물론 나만 조급했던 것은 아니었다. 손님들도 왜 빨리 안되냐는 눈빛으로 카드 단말기를 바라보았다. 아들과 함께 오신 할아버지 한 분은 아들에게'니가 카드를 너무 많이 끊어서 안 되는 거 아니냐!'하고 호통을 치기도 하셨다..^^;; 귀가 잘 안 들리셔서 그게 아니라고 중간에서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난다.
오후에 인터넷 선의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은 끝났다. 반나절의 경험을 통해 그동안 빠른 인터넷 선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내 주변의 당연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계기도 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몇 초 안 되는 잠깐의 기다림조차 참기 힘들 정도로 인내심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반성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국민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문화가 빠른 시간 내에 고도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인내심을 갖지 못하고 조급해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예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이탈리아의 한 마트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건을 골라서 계산대로 가져갔는데, 계산하는 직원이 손님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서두르지 않고 말 그대로 '자기 할 일 다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계산하다 멈추고 전화 통화를 하더니, 또 중간에 휴지통을 비우고 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나라 문화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를 보여주는 특징적인 행동들도 있다.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른다든지, 컵라면이 익는 3분도 기다리기 힘들어 중간에 열어보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이런 것들은 사소한 일이지만 빨리빨리에 집착한 나머지 부실공사로 이어져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심각한 경우도 있다.
목표를 위해 빠른 속도로 열심히 달려 나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은 잠시 멈추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등산을 할 때도 정상만 바라보고 올라가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놓치게 된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이므로 조금 늦게 가도 괜찮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일상에서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강박적이고 조급한 태도를 내려놓고 여유를 가진다면,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표정도 온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