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근무하며 '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남녀의 태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그러하다.
여성 분들은 혹여 누가 보거나 들을까 봐 무척이나 조심하는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남성 분들은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셔서 가끔 나를 당황스럽게 할 때도 있다.
여성질환 상담을 하러 오신 분들은 특징이 있다.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들어와 여자 약사님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증상을 이야기하신다. 그러면 나 역시도 같이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된다.
때로는 정확한 상담을 위해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말을 대충 얼버무리거나 불편한 티를 내신다. 빨리 약만 사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자기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신해 약을 사러 온 것처럼 말하시는 분도 있다.
"약사님, 요즘에 계속 밑이 조금 가렵고 그런데... 아, 내 친구가 그렇다고 대신 약 좀 사 오라고 하네."
5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셨다. 말씀하시는 뉘앙스가 본인 이야기인 듯했지만 모른 척하고 약을 챙겨드렸다. 그런데 조금 낫는 듯하다가 계속 재발한다고 여러 번 약을 사 가시길래, 마지막에는 넌지시 병원에 가보실 것을 권해드렸다.
그랬더니 며칠 뒤 그 아주머니께서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산부인과 처방전을 갖고 오셨다. 혹시나 무안하실까 봐 끝까지 모르는 척 해드렸지만, 질염은 여성의 감기 같은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상담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반면 나를 당황스럽게 한 경험도 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 분이 처방 약을 받더니 큰 소리로 한 마디 하셨다.
"젤리도 하나 같이 넣어줘"
'젤리? 무슨 젤리를 말하는 거지? 비타민 C젤리? 아이들 영양제 젤리?'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결국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한번 더 되물었다.
"젤리요? 어떤 젤리 말씀하세요?"
나의 질문에 아저씨는 약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아, 젤리 말이야~~ 그 있잖아? 모르면 됐고!!"
아... 필요 이상으로 짜증을 내며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 걸 보고 어떤 젤리인지 감이 왔다. 우리가 보통 러브젤이라고 부르는 윤활제를 뜻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러브젤' 또는 '부부 관계할 때 쓰는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대뜸 '젤리'라고 하셔서 생소했던 것이다.
휴... 약국에서 일하려면 눈치도 빨라야 된다. 다행히 마지막에 어떤 젤리인지 이해해서 제대로 챙겨드릴 수 있었다.
콘돔을 구매할 때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여성 분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다가 재빨리 갖고 오셔서 봉투에 넣어달라고 하신다. 반면 남성 분들은 진열대의 여러 제품을 한참 비교해보고 때로는 제품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차이점을 물어보기도 한다.
약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은 능숙하게 성에 관련된 문제도 상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나 역시 초보 시절에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제대로 말도 못 했다.
하지만 성은 감추거나 부끄러워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서 상대를 당황스럽게 할 문제도 아니다. 반반 정도 섞으면 딱 좋을 텐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이것 역시 내 마음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