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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Jul 04. 2022

개국의 두 가지 방법, 결국은 돈이 문제로다

개국을 생각한다면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기존 약국을 인수받는 방법

2. 신규 약국을 오픈하는 방법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 약국을 인수받는 편이 위험 부담은 좀 적지만, 만만치 않은 권리금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에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는 게 단점입니다.


저는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어서 수도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알아보는 것마다 억 소리 나는 권리금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자본과 실제 권리금의 차이를 확인할 때마다 괴리감을 느낍니다. 근무 약사만 하던 시절에는 권리금이 이렇게까지 비싼 줄 몰랐거든요.


매도인의 입장에서는 본인도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다면 그 이상을 회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동안 약국을 키워온 노고를 보상받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을 벗어난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지불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큰 금액인 거죠. 이렇게 매도인과 매수인의 관점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약국 시장은 권리금이 너무 높아진 상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워낙 수요가 많으니까 더 올라간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약국 시장에서도 적용되니까요. 개국 강의도 들어보고 여러 약사님들의 의견도 종합해본 결과, 요즘은 통상 2년 안에 지불한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건 변수가 많은 만큼 2년 안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죠.


이전 데이터만 보고 잘 될 거라는 기대로 권리금을 주고 인수했는데, 갑자기 병원이 이전을 하거나 폐업을 할 수도 있고 층약국이나 경쟁 약국이 치고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개국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치고 들어오는 경쟁 약국을 '치들'이라고 한답니다. 워낙 약국 자리가 없으니 요즘은 이렇게도 개국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악덕 건물주를 만나 분쟁이 생길 수도 있고요. 물론 사업이라는 게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해야 되는 건 맞지만 억대의 권리금이 적은 돈은 아니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거죠.


아, 물론 개국할 때는 다들 자기 자본만으로 하는 건 아니고 대출을 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을 할 때는 레버리지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요즘같이 이율도 높은 시기에 영끌을 해서 대출받아 권리금을 주고 개국했는데, 예상했던 것만큼의 수익이 나오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자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제가 가진 작고 소중한 자본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금액의 권리금을 계속 접하다 보니, 조금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한 요즘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편하게 시작하겠다고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 가능성에 억대의 권리금을 투자하느니, 그냥 신규로 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처음부터 시작해야 되지만 권리금이라는 초기 비용이 들어가지 않고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약국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신규 자리가 거의 없기도 하고 여기에도 다른 명목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신규 병원과 같이 시작하는 경우 많은 병원들이 인테리어 비용을 요구합니다. 일종의 지원금이죠. 의약분업 이후 약국이 일정 부분 처방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면서, 병원과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 되어버린 게 현실입니다. 운 좋게 좋은 원장님을 만나 그런 요구를 받지 않더라도 약국이라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높은 임대료를 부르는 건물주도 많습니다. 주변 시세를 고려해봤을 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개국을 하고 싶은 약사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거죠.


이쯤 되니 현타가 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개국을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그냥 속 편하게 계속 근무 약사로 일할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나름 약사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개국 시장에서는 여기서도 을, 저기서도 을이니 좌절감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이럴 바에야 그냥 병원도 약국도 없는 동네에 가서 혼자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 아파트 단지는 어느 정도 들어섰는데 아직 병원이나 약국이 없는 동네가 있거든요. 아마 언젠가는 들어오겠지만 아직은 개발이 덜 된 상태라서 위험하다는 생각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거겠죠.


병원이 없으니 당장 처방전은 없겠지만, 경쟁 약국도 없으니 일반약 위주로 판매하면서 상담 약국처럼 운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저의 말을 들은 선배 약사님들은 모두 극구 말리셨습니다. 그런 낭만적인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망한 사례들을 하나하나 읊어주시면서요.


휴... 뭐 하나 쉬운 게 없네요. 예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약국의 약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약국을 하려면 돈이 많던가, 아님 열심히 손품 발품을 팔아야 된다고.


네, 사실 돈만 많으면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금액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약국을 인수받거나 병원 입점이 확정된 메디컬 빌딩의 약국 자리를 분양받으면 되니까요. 아님 그냥 건물을 하나 사서 월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상담 약국을 해봐도 되고요. 사실 약국 매물을 찾다 보면 제 눈에도 좋아 보이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 결국 마음에 드는 곳이 없는 게 아니라 조건이 맞는 곳이 없을 뿐이죠.


자, 그럼 저는 돈이 많지 않으니 열심히 손품 발품을 팔아야 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약국 매물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찾아보고,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 신규로 할 만한 자리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로드뷰로 먼저 보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직접 찾아가서 둘러보기도 하고요.


하지만 병원이 있는데 약국이 없는 자리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처방이 거의 안 나오는 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또는 미용이나 시술 위주의 의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간혹 처방이 나올만한 과인데도 약국이 없는 곳은, 주변에 약국이 들어갈만한 자리가 없거나 원장님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더군요.


네... 제가 사는 도시는 동 별로 다 돌아보았는데 신규로 할만한 자리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습니다.  


아아, 내 약국은 대체 어디에....



웹툰 <내과 박원장>


저렇게 수많은 의원이나 병원이 있는 건물 1층에는 반드시 약국이 있습니다. (임대료가 무척 비싸겠죠.. 아님 건물주이거나...) 심지어 1층에 약국이 있어도 병원이 있는 층에 층약국이 있는 곳도 있고요.


예전에 <내과 박원장> 웹툰을 볼 때는 그냥 짠하다, 안 됐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 다시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박원장 님의 심정이 마음 깊이 공감되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겪은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이왕이면 제가 사는 도시에서 개국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 시야를 좀 더 넓혀서 생각해봐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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