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

알고 보면 엄마의 '큰 그림'

by 글짓는약사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미용실 옆집이었다. 미용실 근처에 살았던 탓에 매일 같이 본 것이 머리 하는 모습이라 종종 동생을 데리고 미용실 놀이를 하곤 했다. 대부분의 날은 동생과 서로 미용사와 손님 역할을 번갈아 하며 "손님,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하고 물으면 "단발로 잘라주세요."라던지 "예쁘게 파마해주세요."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머리 하는 시늉을 하는 역할 놀이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고를 쳤다. 부모님은 안 계셨고 동생과 둘이서 여느 날처럼 미용실 역할 놀이 중이었다. 그날은 내가 미용사였고 동생이 손님이었다. 보통은 머리 하는 시늉만 하는데 그날따라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동생을 앉혀놓고 진짜 가위를 꺼내 들었다. "언니가 예쁘게 잘라줄게."라고 동생에게 다정하게 얘기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그저 재밌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용실에 가면 두르는 가운 대신 이불로 동생 몸을 두르고 엄마가 바느질할 때 쓰던 큰 은색 가위를 손에 들고는, 미용실에서 본 것처럼 손가락 사이에 머리를 끼우는 흉내를 내며 잘라 보았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머리는 삐뚤빼뚤하게 잘렸고 잠시 후 동생은 거울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뒤의 일은 기억이 안 난다.(아마도 미용실에 가서 다시 다듬었겠지...) 동생 머리를 잘랐다고 엄마한테 혼났고 일을 계기로 우리의 미용실 놀이는 끝났다.




얼마 후 새로 이사 가게 된 집은 피아노 학원 안집이었다. 건물 구조가 특이했는데 하나의 건물을 두 개로 나누어 세를 준 것인지, 우리 집 거실에서 피아노 학원으로 이어지는 방문이 있었다. 물론 그 문은 열리지 않는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고, 학원 쪽에 어느 정도 방음 장치를 해서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매일 같이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다.


당시 나는 한창 궁금한 것이 많았던 초등학생이었기에 매일같이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듣기 싫다기보다는 '나도 쳐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엄마를 졸라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의외로 피아노를 쳐보니 재미도 있고 선생님께 잘 친다는 칭찬도 받았다. 피아노 학원에서 음악 공부를 해서인지 음악 시험도 매번 100점이었다. 그때쯤 나의 장래희망 칸에는 '피아니스트'가 적히곤 했다.


몇 번인가 피아노 콩쿠르 대회도 나가서 상도 받고 드디어 언니들이 치는 것만 봤던 체르니 40번에 들어간 어느 날, 엄마가 이제 피아노는 그만하면 더 안 배워도 되겠다고 말했다. 대신 중학교에 들어가야 하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피아니스트의 꿈은 사라졌다. (그때 못 배운 피아노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던 탓일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번 더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사를 갔던 곳은 내가 다닌 중학교 근처였다. 걸어서 등하교를 했기에 아마도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갔던 것 같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때문에 집에서 공부하기 힘들까 봐 걱정한 엄마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사를 간 이후로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공부한 만큼 성적도 잘 나와서 엄마도 기뻐했다. 그래서 그 집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살다가 그 후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는 미용실 근처에서 산 덕에 적당히 미용에도 관심이 있고, 피아노 학원 근처에서 산 덕에 피아노도 어느 정도 치고 음악도 좋아하며, 학교 근처에서 산 덕에 공부도 열심히 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것이 '엄마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가 떠오른다.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사람으로서 백번 공감한다.


결과적으로 엄마가 그린 큰 그림은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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