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미혼 여자 셋, 우리가 연말을 보내는 방법

by 글짓는약사

시작은 조용하던 단톡방에 친구 한 명이 보낸 메시지였다.

"다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해? 연말인데 그래도 파티는 한번 해야지."


시국이 시국인지라 올해는 연말도 조용히 집에서 보내려고 했는데,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그래도 연말인데 우리끼리 소소하게라도 파티는 해야지!

"콜!!"

20년 지기 친구인 우리 셋은 크리스마스이브에 한 친구가 자취하는 오피스텔에 모여서 파티를 하기로 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카톡이 왔다.

"나 오늘 내추럴하다."(화장 안 했다는 말..)

"응. 나도~~ 마스크 쓰는데 뭘. 우리끼리 놀 거잖아..ㅎㅎ(코로나가 오고 마스크를 쓰고 나서는 용감해졌다. 화장하지 않아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메인 메뉴인 치킨을 배달 주문하고 그동안 마트에 들러 간단한 주전부리를 샀다. 딸기와 파인애플, 핫멕시칸 할라피뇨 콘칩(새로 나온 콘칩, 신기해서 사봤다!), 무알콜 와인(술을 다들 잘 못 마신다), 캔 칵테일(4도 정도 되는 술, 맛있어 보여서 충동구매), 진저에일(친구가 맛있다고 극찬함) 이렇게 사들고 계산대로 갔더니 기다리는 줄이 엄청나다. 다들 크리스마스이브에 먹을 것만 사러 오는 건가..


어디가 좀 빨리 줄어들까 눈치를 살피다가 셀프 계산대로 갔다. 어차피 품목이 몇 개 되지 않으니 그게 빠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가지고 온 물건들의 바코드를 하나씩 찍는데 캔 칵테일을 찍으니 화면에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나온다. 직원분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더니 금방 오셔서는 우리 얼굴을 한 번씩 스캔하신다. 그리고 두말없이 인증을 해주신다.(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서 눈밖에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성인임을 인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계산을 마치고 장 보느라 꼬르륵거리는 배를 달래며 친구의 집으로 갔다. 날이 날인지라 주문한 치킨은 아직 오지를 않고, 우선 콘칩을 뜯어먹었다.

"이거 맛있는데? 매콤한데 고소해. 중독성 있어!"

정신없이 과자를 주워 먹으니 친구가 한마디 한다.

"적당히 먹어. 곧 치킨 올 건데~~"

"치킨은 치킨이고, 과자는 과자지. 괜찮아."

"그럼 우선 와인이라도 한잔씩 할까? 이거 맛있어 보이던데"

"응응 한잔씩만 먼저 마시자!!"


무알콜 화이트 와인을 와인잔에 따른다. 친구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와인잔 옆에 갖다 놓으니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조명도 은은하니 와인잔이 빛난다.

"와 예쁘다. 사진 찍자! 남는 건 사진뿐이야. 구도 좀 예쁘게 잡아봐. 분위기 있는 사진 한 장정도는 건져야지."

이리저리 와인잔 위치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어본다. 제법 마음에 드는 사진이 찍혔다.




"됐다 이제 먹자. 배고파."

우리가 사 온 무알콜 화이트 와인은 청포도맛 탄산음료였다.

"이거 완전 음료수야. 너무 맛있잖아...ㅎㅎ 근데 무알콜인데 왜 취하는 거 같지? 기분 탓인가?"

분위기에 취해 무알콜을 마셔도 기분이 한껏 들뜬다.

"야 우리 사진 찍자. 모여봐!"

"어플로 찍어라. 화장 안 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나 그 정도 예의는 있다."

깔깔대고 웃으며 한참을 사진을 찍고 있으니 드디어 기다리던 치킨이 왔다.


한 친구의 어머니께서 치킨이라도 시켜먹으라며 2만 원을 찬조해주셨다고 한다. 어김없이 연말에 또 모여서 노는 우리가 안쓰러웠던 걸까?! (암튼 어머니 감사합니다..ㅎㅎ)



오늘의 메뉴는 또띠아에 순살 치킨을 얹어 볶은 야채, 각종 소스와 함께 먹는 메뉴였다. 멕시코 요리인 파히타 같은 느낌이었다. 늘 먹는 치킨과는 또 다른 느낌, 홈파티 안주로 제격이다. 와인과 치킨, 친구들과의 즐거운 수다, 아늑한 분위기.


그 순간을 기억에 새기고 싶어 마음속의 셔터를 눌렀다. 함께이기에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밤이다.


디저트로 과일과 캔 칵테일까지 야무지게 다 먹고는 다들 기댈 곳을 찾아 몸을 기댔다.

"아, 너무 배불러. 나 청바지가 배를 조여서 힘들어. 고무줄 바지 입고 올걸 그랬나 봐..ㅋㅋ"

"안 되겠다. 우리 나가서 좀 걷자."

"지금 이 야밤에? 너무 늦었는데.."

"안돼, 우리 나이에 이렇게 먹고 바로 자면 큰일 나. 일어나. 나가자!"


그렇게 우리는 늦은 밤 산책을 나갔다. 생각보다 바람은 많이 차갑지 않았고 얼굴에 와닿는 밤공기가 오히려 상쾌했다. 가까운 공원 전망대로 올라갔다. 밤길이라 혼자서는 올라가기 좀 무서웠지만 우리는 함께였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생각보다 좋았다. 반짝이는 조명들, 장난감 같은 건물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물까지. 감탄하며 잠시 야경에 취해있는데 한 친구가 뭔가 발견을 하고 우리를 불렀다.



"야 저것 봐. 저기 건물에 조명이 눈코입 같지 않아? 사람이 웃고 있는 거 같은데?"

한 건물에 일부분만 불빛이 들어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신기하게도 정말 사람 눈코입 같은 모양이었다. 우리를 향해 웃고 있는 듯한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같이 웃다가 사진으로 그 순간을 남기고 내려왔다.


"근데 이제 너무 졸리다. 빨리 가서 자야 될 것 같은데..."

나이가 드니 더 오래 놀고 싶어도 체력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놀 때는 마냥 즐겁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빨리 찾아온다. 휴대폰을 오래 쓰면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것처럼 우리의 체력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20대 때는 밤을 새워 놀기도 했는데 30대인 지금은 어림없는 소리다. 불과 몇 년 전인데 그땐 어떻게 그렇게 놀았나 싶다. 30분 정도의 산책으로 방전된 몸을 이끌고 자정이 되기도 전인데 택시를 타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 건전한 우리의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또 한 번의 연말을 이렇게 함께 보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가장 친한 20년 지기 친구들은 모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특별한 뭔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녀들이 있기에 감사하다.


나의 2021년 연말도 그녀들과 함께 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덕분에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 내년에도 함께 하자. 그래 줄 거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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