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냐고 묻거든 그저 웃지요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글짓는약사

매일같이 읽고 쓰는 생활을 하다 보니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쓰는 걸까.


글을 쓴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계속 쓰는 이유가 뭘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그러하다. 가끔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책 읽는 인구도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심지어 글을 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왜 쓰냐고 묻는 질문을 받으면 그저 웃으며 "그냥.."이라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렸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친분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는 굳이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블로그와 브런치에서도 필명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현실의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다.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쓰는 많은 작가님들 역시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1.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글로 만들었을 때의 기쁨


책을 읽는 것에만 집중하던 과거에는 그저 읽기만 했다.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풋이 쌓이자 자연스럽게 아웃풋의 욕구가 생긴 것이다. 완벽하게 정리된 형태는 아니지만, 내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밖으로 꺼내 주길 바라며 노크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때부터 무작정 써보았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붙잡아 다듬고 짜임새 있게 이어 붙이는 작업을 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마침내 나만의 글이 완성되는 순간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마치 디자이너가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보며 뿌듯해하고,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보며 기뻐하듯,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무형의 생각이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유형의 글로 탄생할 때 깊은 충족감을 느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올리고 내 글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나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주목받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글은 조금 다르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고, 읽는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쓴 글 하나하나가 마치 내 자식 같아 애틋한 마음도 든다.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엄마같이 누군가 내 글을 칭찬하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직 아이를 낳아보진 않았지만 부모가 된다면 아마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2.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일기를 쓰면서 경험한 글쓰기의 효용이다.


나는 매일 자기 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에 고여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 적어본다. 하루를 돌아보며 나 자신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낮동안 적당히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꺼내어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어른이기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해야 될 때가 많다. 그래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웃고 넘겨야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여있는 것들을 적절히 해소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매일 일기를 쓰며 그 감정들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마음이 힘들 때도, 한참을 써내려 가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어지럽게 뒤엉켰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쓰면 나아졌다.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진 않아도 쓰기 전보다는 나아졌다. 어지러움의 일부가 고요를 되찾고, 우울은 서핑 가능한 수준의 파도가 되었다. 활화산 같던 일들이 성냥불처럼 소박해졌다. 나는 입김을 후 불어 불씨를 껐다. 성냥불을 끄는 건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윤주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글처럼 나 역시 단순히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위로받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매일 쓰는 일'은 나의 중요한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나는 어떤 상황에 취약한지, 어떤 말에 상처받는지, 그 순간 왜 기분이 나빴는지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3. 순간을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욕구


인생은 흘러가는 강물 같아서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의 강물이 어떠했는지 기록해놓을 수는 있다. 누구와 함께 했는지, 그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날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같은 것들을 마치 사진을 찍듯 글로 생생하게 남겨두는 것이다.


기록함으로써 그 순간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흘러가버린 과거가 아닌, 마음만 먹으면 꺼내어 되새겨볼 수 있는 기억이 된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그 순간을 소환할 수 있다. 그렇게 반짝이는 기억들을 하나 둘 모으다 보면 점점 내 삶에 애정을 가지게 된다.


즐거웠던 순간도, 힘들었던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지나고 난 뒤에 바라보면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된다. 그래서 나는 다채로운 모든 순간들을 글로 남긴다. 내 인생의 강물을 추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글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내 일도 사랑한다. 글쓰기는 내 삶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플러스알파의 역할을 할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글쓰기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전업작가도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매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 생계를 해결해야 된다는 압박도 없고, 누가 시키거나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완성된 형태의 글을 매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일기, 휴대폰 메모, 블로그 글 등 어떤 방식으로든 매일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세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가끔 글쓰기에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 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쓴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내 경험과 내 생각이 담겨있는 글은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