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주를 보는 마음

by 글짓는약사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나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해진 운명대로만 살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운'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노력 X 운 = 운명

인생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이 중 상당수는 내 통제권을 벗어나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운'이라고 부른다.

정회도 <잘될 운명으로 가는 운의 알고리즘>


개인적으로 이 공식에 무척 동의하는 입장이다.


운명에는 운과 노력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작용한다.


그래서 불운이 들어올 때는 오히려 노력하는 것이 헛수고일 수 있다. 즉 '열심히'만 산다고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반대로 행운이 아주 크게 들어오는 때일지라도 노력값이 0이라면 운명값도 0으로 수렴한다. 예를 들어 로또 1등에 당첨될 운이 있어도 로또를 사러 나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비슷하게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다. 운이 7할이고 재주(노력)가 3할이라는 뜻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운과 노력 두 가지가 다 필요하지만 운이 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생사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체념의 뜻으로 쓰기도 한다.


운과 노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기보다는, 인생에는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주라는 것을 백 프로 믿지는 않지만 '명리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이니 어느 정도 참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명리학은 태어난 연, 월, 일, 시의 네 간지 즉, 사주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다. 여기서는 개인의 사주를 분석해 나무, 불, 물, 쇠, 흙 등 5가지 기운의 상생과 상극 관계를 따져서 길흉화복을 판단한다.




그래서 엄마가 철학관에 사주를 보러 다녀오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물어본다. 나의 운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의 입을 통해 듣는 내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쩌면 심리테스트나 mbti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간단한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의 성향을 알 수 있는 테스트들이 유행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결과가 나오면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며 신기해한다. 게다가 사주는 나의 앞날에 대해 남이 이야기해주는 것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보통은 엄마 혼자 보고 와서 나에게 결과만 이야기해주는데 딱 한번, 엄마와 같이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엄마 지인 분들이 보고 왔는데 정말 잘 맞다고 해서 호기심도 생겼고, 그 당시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이 힘들었던 탓도 있다.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더니 인상 좋은 아저씨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를 묻더니 책상 위에 놓인 종이에 받아 적으셨다. 그러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한자로 뭔가를 써 내려가더니 다 쓰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씩 설명을 해주셨다.



우선 직업운. 약품을 다루거나 가르치는 일이 좋다고 했다. 아무 말 안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신기했다. 역시 직업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재물운. 대기만성형이라고 했다. 일종의 자수성가 타입인데 사주에 재물은 많다고 하니 기분은 좋았다.



문제의 결혼운. 사주를 보러 갔을 때가 2018년이었는데, 2019년에 이동운이 있고 결혼운도 그때쯤 있다고 했다. 사실 그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가 있기는 했지만 결혼 생각은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정말 다음 해에 남자 친구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다. 스스로 확신이 없었던 탓에 결국 헤어졌지만.


사주에 따르면 나는 결혼운이 진작부터 있었다고 한다. 30대 초반부터 결혼운이라는 게 쭉 있었지만, 그건 운이 있다는 뜻이지 반드시 한다는 건 아니라고 한다. 즉 이왕이면 결혼운이 있을 때 결혼을 하면 좋다는 의미일 뿐이다. 여기서도 운과 노력이 곱해져서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운이 있다한들 내가 하려는 생각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것.


여기저기 잘 맞다는 철학관에 자주 다니는 엄마 덕에 여러 곳에서 물어본 결과, 사주는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주는 점과 달리 학문의 영역이므로 거의 비슷하게 나오는 듯하다. 나는 재물운도 있고 시집도 잘 간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게 대체 언제란 말인가.


얼마 전 또 철학관에 다녀온 엄마 말로는 올해부터는 모든 운이 풀린다고 한다. 이때까지는 고생을 좀 했지만, 이제 초년의 고생이 끝나고 죽을 때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희망에 부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인생은 대본도 없이 진행되는 생방송 같은 것이다. 리허설도 없고 정해진 대본도 없으니 그때그때 어떻게든 대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지나고 나서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므로 그 결과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사주는 이렇듯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몰래 훔쳐볼 수 있는 대본이다. 우리는 사주를 보며 '앞으로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말속에서 희망을 찾고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노력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주의 효용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사주팔자는 바꿀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나의 노력 여부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는 있다. 운과 노력 중 어느 한쪽에 편향되기보다는, 나에게 좋은 운이 왔을 때 최선의 노력을 하여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나 역시 가끔 사는 게 고단하고 지칠 때, 이번 생에 결혼을 할 수는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이밀 때, 사주 풀이를 떠올리며 힘을 내본다. 그래서 그때 받아온 이 종이를 버리지 않고 고이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이따금 힘들 때 꺼내서 읽어보며 힘을 얻는 나만의 에너지 충전소라고나 할까?


이것이 사주를 보는 나의 마음이다.




keyword
이전 11화취미는 가성비의 영역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