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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가성비의 영역이 아니니까

by 글짓는약사

"취미가 뭐예요?"

"주말이나 퇴근 후에는 주로 뭐하세요?"


전자와 같은 직접적인 질문이든 후자와 같은 간접적인 질문이든, 묻는 내용은 같다. 일 외에 '재미'로 하는 활동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인데, 주로 소개팅 자리나 서로 알아가는 사이에서 많이 주고받는 질문이다. 취미를 통해 상대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성향도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질문을 받는 시기마다 대답이 조금씩 다르다. 고정적으로 이야기할만한 것은 만인의 취미인 책 읽기, 영화보기, 산책하기. 그 외에 그때의 관심사에 따라 새로운 취미가 추가된다.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나 시작하면 일단 준비물이 제대로 갖춰져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그게 바로 나다. 필요한 물품들을 검색하고 주문할 때부터 이미 설레기 시작한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하지만,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준비해서 해야 효율이 오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미란 그저 재미로 하는 활동이기에, 재미의 유효기간이 다하면 쉽게 그만두기도 한다. 업으로 삼을 것도 아니고 자격증을 따야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담감이 없다. 그래서 그동안 나를 거쳐간 취미만큼이나 다양한 물품들도 쌓여있다는 것이 문제다.




첫 번째 취미는 1년 정도 했던 요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던 20대에는 축복받은 유전자를 가졌다고 믿으며 열심히 먹었다. 30대가 되어서도 똑같이 먹은 결과, 그것은 나의 오만한 착각임을 깨달았다. 숨쉬기 운동만 하던 내가 걷기 운동을 시작한 이유였다. 하지만 비가 오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빼먹는 날이 많다 보니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운동이 요가다.


필라테스는 생각보다 비쌌고,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헬스는 재미가 없었다. 요가는 다양한 동작을 하며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유연성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가끔 티브이에서 고난도의 동작을 해내는 연예인들을 보며, 막연하게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요가를 하기로 결정하고, 등록하기 전 제일 먼저 한 것은 물론 요가복 사기!

필수템인 레깅스와 브라탑, 신축성 좋은 티셔츠. 그리고 요가매트와 폼롤러도 주문했다. 주말에 집에서도 할 거라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도착한 요가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보니 그럴듯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고난도의 동작을 멋지게 해내는 내 모습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물론 실제와 상상은 달랐다. 기본 동작도 제대로 못 따라 할 때가 많아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기분 좋은 근육통을 느끼는 동시에 뿌듯한 기분이었다. 연습을 거듭하며 안되던 동작이 하나씩 될 때, 짜릿한 성취감도 느꼈다.


하지만 코로나가 온 뒤로 불가피하게 한동안 가지 못했고, 조금 잠잠해진 후 다시 갈 때는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받았다. 그냥 해도 힘든 동작인데 마스크를 쓰고 하려니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았다. 도저히 계속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집에서 혼자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해도 되지만 그게 생각만큼 잘 안 된다. 결국 요가매트와 폼롤러는 거실 한구석에 먼지만 둘러쓰고 방치되어 있고, 색깔별로 구입한 레깅스 역시 옷장 속에 봉인되어있다.


다음은 보태니컬 아트.

평소 식물도 좋아하고 다양한 색깔의 필기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에게, 색연필로 식물을 그리는 보태니컬 아트는 운명 같은 취미였다. 정당한 사유로 색연필을 주문할 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둥실둥실 떠다녔다. 처음에는 36색 색연필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결국 다른 브랜드의 72색 색연필을 하나 더 샀다.


몇 시간에 걸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혼자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이게 정말 내가 그린 거라고?'

혼자 보기 아까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자랑도 했다.


문제는 세밀화다 보니 그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 장인의 정신으로 선 하나하나를 수십 번 그어서 면을 채우는 작업이라, 몇 시간씩 몰두해서 하다 보면 목이며 어깨며 근육통이 생기기 일쑤였다.


결국 보태니컬 아트도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두었고, 색연필 역시 쓸모를 잃고 서랍 속에 갇혀있다.

이외에 캘리그래피, 프랑스 자수, 아크릴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취미가 나를 거쳐갔고, 그때마다 새로운 물품들도 하나씩 추가되었다. 이쯤 되면 집에서 취미 클래스를 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혹자는 자격증을 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이냐고 묻는다. 모든 일에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취미는 그냥 재미로 호기심으로 하는 거지 돈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미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봐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따라서 취미는 잘해야 될 필요도 그걸로 돈을 벌어야 될 필요도 없다. 물론 우연히 해 본 취미 생활에서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여, 그걸로 돈도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만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수많은 온라인 취미 클래스가 생기고 잘 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취미는 가성비의 영역이 아니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돈과 시간을 들여서 단지 '재미'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


가성비를 따지는 태도는 내려놓고, 한 번뿐인 인생을 좀 더 즐겁고 다채롭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취미 생활을 해보면 어떨까?

(집에 방치된 물품들을 보며 죄책감이 생겨서 쓰는 글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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