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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니진과 이별한 이유

나를 사랑하는 방법

by 글짓는약사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한 때 스키니진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너나 할 것 없이 스키니진을 입고 다녔고, 청바지를 사러가도 거의 스키니진 위주로 판매했다.


그래서 나 역시 한 때는 거의 매일 스키니진을 입었다. 아침마다 타이트한 바지에 다리를 끼워 넣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단추를 잠갔다. 하루 종일 스키니진을 입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다리에 박음질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고, 다리가 조이니까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 다리가 아픈 날도 많았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스키니진을 입었던 이유는 유행이기도 했지만 입었을 때 내 모습이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보다 날씬해 보이는 느낌, 거기서 오는 자기만족,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도 그렇게 보일 거라는 생각. 과거의 나는 고작 그런 이유로 내 몸을 혹사시키며 스키니진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뜻밖의 사건으로 나는 스키니진과 이별하게 되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스키니진을 입으려고 했다. 살이 조금 찐 탓인지 그날따라 스키니진에 다리를 넣었는데 잘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손에 힘을 주며 힘껏 바지를 위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무리하게 힘을 주었는지 그만 손톱이 깨졌다. 피가 맺힌 손톱을 보며 현타가 왔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피를 보면서까지 이 바지를 입어야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부터 스키니진을 입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집에 있던 스키니진을 몽땅 싸서 헌 옷 수거함에 갖다 넣었고,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스키니진을 입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나니 스키니진 외에도 내 몸을 조이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옷은 한순간도 입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옷 때문에 신경 쓰이고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내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굳이 그런 옷을 입어야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발도 발을 작아 보이게 하는 볼이 좁고 굽이 높은 예쁜 구두에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다.


편한 것을 추구하는 나이가 된 탓도 있겠지만 보이는 것에서 오는 자기만족, 남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보다 내 몸을 편하게 해 주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옷이나 신발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적용되었다. 이제는 참석했을 때 내가 불편하거나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는 모임은 나가지 않는다.


한때는 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내향성의 mbti를 가진 나의 성향을 바꾸고자 노력도 해보았다. 인맥 관리 차원에서 또는 기존의 좁은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봐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이런저런 모임을 나가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본적으로 다수가 참여하는 모임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런 식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어려웠고, 어떤 이유로 모임이 깨지고 나면 더 이상 연락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얕은 관계의 여러 사람들과 친목 도모를 위한 술자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과 피로감만 더해졌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의미 없는 대화들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누구와도 마음 깊이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그 시간에 혼자서 나를 위한 휴식을 취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마음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만나 속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도 소중하다.


관계는 처음 맺는 것보다 유지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로는 인간관계가 더 심플해졌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과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경계가 확실해진 느낌이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부터 시작하는 거지. 왜냐, '좋음'보다 '싫음'의 감정이 더 직감적이고 본능적이고 정직해서야. '하기 싫은 것/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 이런 것들을 하나 둘 멀리하다 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가 절로 선명해져. 직감적으로 '아, 싫다'라고 느끼면 나를 그들로부터 격리해주는 것이 가장 본질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해.

요조, 임경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가장 본질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말이다.


원래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나 자신과의 관계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그런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줘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관계도 생활방식도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고, 따라서 안 맞는 것에 굳이 나를 끼워 넣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키니진이 안 들어가면 편안한 일자바지, 부츠컷 바지를 입으면 되고,(고무줄 바지도 있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된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애쓰거나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려는 욕심을 버리자. 불가능한 일을 해내려고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어리석은 욕심이 나를 갉아먹게 만들지는 말자.


대신 내가 살아갈 세계를 나 스스로 선택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나의 세계를 결정짓는 테두리를 그리자.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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