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흥미로운 무언가에 자원을 쏟아부으려 할 때, 우리가 실패하고 다치고 망하고 상처받을까 봐 말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가족이란 대개 그런 존재다.
나는 가족과 나의 기대가 상충할 때,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궁극적으로는 나의 행복을 지지할 거라는 믿음으로 최대한 이기적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가족들도 철저하게 자기 행복만을 위해 살아주기를, 나를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기를, 결과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채무감을 지우지 않아 주기를 바란다.
이숙명 <혼자서 완전하게>
가족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의 온전한 개인이므로, 서로에게 자신의 욕구를 투영하거나 기대하지 말고 각자 '온전한 1인분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모들 중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가 해내도록 강요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또한 자녀가 원치 않는데도 무조건적인 지원을 하고,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희생에는 보상 심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다 너 잘 되라고' 자녀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자녀를 온전한 1인분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예전에 비해 자녀 수가 감소하면서 대부분 하나 아니면 둘이기 때문에 이런 경향성이 더 심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그 결과 온전한 1인분의 삶을 포기하고 '캥거루족'같이 독립에 실패한 자녀가 생기기도 한다.
한편 어릴 때부터 부모 말을 거역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경우, 성인이 되어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부모의 기대가 상충될 경우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 부모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되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
물론 누군가를, 특히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을 실망시키는 것은 마음이 무겁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후회가 찾아올 것이고 그것은 원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호주 출신의 작가 브로니 웨어가 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간병인으로 일하며 그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말하는 후회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5.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결국 사람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거나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같은 내용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는지, 삶의 많은 순간에 행복을 느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을 하고, 또한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