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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Apr 24. 2022

나는 비빔냉면을 먹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동생이 집에 온 주말이라 점심때 가족 외식을 하기로 했다. 뭘 먹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선택한 메뉴는 냉면. 날씨가 더워지니 시원한 냉면이 생각났다. 그래서 여름이면 자주 찾는 냉면집을 가기로 했다. 냉면과 맛있는 석쇠불고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이라 다들 좋아한다.


냉면은 물, 섞음, 비빔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보통 섞음 냉면을 자주 먹는다. 물과 비빔 중에 고민될 때는 두 가지를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섞음이 제격이다.


하지만 오늘은 진한 양념 맛을 느끼고 싶어 비빔으로 선택했다. 엄마와 동생도 덩달아 비빔을 먹겠다고 했고 아빠만 섞음을 먹기로 했다.


때마침 옆에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계시던 사장님께 바로 주문을 했다.

"비빔 세 개, 섞음 하나로 주세요."

한 번 더 주문을 확인하신 사장님은 테이블 정리를 마치고 주방 쪽으로 가셨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직원분이 물었다.

"비빔은 어느 쪽으로 드릴까요?"

응? 질문이 좀 이상했다. 섞음이 하나니 섞음을 어디로 드릴까요,라고 물어야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가져온 음식을 살펴보니 이런, 주문이 반대로 들어갔나 보다. 섞음 세 개에 비빔 하나가 나왔다.


"음식이 잘못 나온 것 같은데요. 저희는 비빔 세 개에 섞음 하나로 시켰는데."

"어머 그래요? 어... 이걸 어쩌지 그럼.. 하하"

서빙하는 직원분이 웃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옆에서 아빠는 그냥 먹자며 우리를 달랬다. 손님도 많고 주방도 정신없을 테니 그냥 먹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비빔이 먹고 싶었던 나는 기분이 떨떠름했다. 내 표정이 안 좋아 보이니 직원분이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누가 주문을 받으셨어요?"

"사장님이 받으셨는데요."

"아.. 제가 그럼 대표님께 말씀드릴게요."


그래서 먹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직원분이 사장님께 말을 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사장님은 말을 전해 듣고 나서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바쁘게 자기 할 일을 하셨다. 기다려도 아무런 해결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결국 포기하고 그냥 먹기로 했다.


하나 나온 비빔은 동생에게 주고 엄마와 나는 섞음을 먹었다. 이미 기분이 나빠져서 그런지 예전에는 맛있게 먹었던 냉면인데도 그저 그랬다. 그렇게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어떠한 말도, 해결도 없었다.


사실 먹으면서도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선 서빙하는 직원분의 태도가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손님이 음식이 잘못 나왔다고 이야기하면 확인하고 다시 갖다 드리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이걸 어쩌지, 라는 말은 손님에게 곤란함을 떠안기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빠같이 마음이 약한 손님이나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먹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사장님의 태도였다. 주문이 잘못 들어갔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적어도 우리 테이블에 와서 죄송하다고 사과 한마디는 할 줄 알았다. 음식을 바꿔주지는 않더라도 실수에 대한 사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걸까.


계산하면서 한마디 할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이미 다 먹은 판국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방문자 리뷰를 적는 곳에 별점 테러를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낱낱이 밝혀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만 치사해지는 것 같아 그것도 그만두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감정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써본다. 이럴 때는 저절로 타자 속도가 빨라진다. (분노의 타자 치기...ㅎㅎ) 아무튼 이렇게라도 털어놓고 나니 좀 후련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물론 애초에 실수를 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100프로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 사람 아닌가. 기계조차도 에러가 생길 때가 있는데 사람이 때때로 실수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실수 자체를 탓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이후의 대처 방법이다. 나는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이렇게만 한다면 실수를 하더라도 오히려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오늘 같은 경우도 사장님이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만 했다면, 비록 음식을 바꿔주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실수했다는 사실 자체를 회피하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갔기 때문에 더 기분이 나빴다.


아마도 그 사장님은 바쁘고 정신없으니 고작 그 정도 실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따지고 들지 않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먹고 나오며 다들 '이제 이 집은 끝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주문을 잘못 받아도 다시 바꿔줄 정신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은 가게지만 오늘 같은 태도로 계속 장사를 한다면 글쎄, 얼마나 오래 잘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경우가 하나 둘 늘어난다면 나처럼 손절하는 손님들이 많아질 테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비단 식당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을 따지며 얼굴 붉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례하게 굴거나 선을 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조용히 관계를 정리할 뿐이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것이 실수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모처럼 기분 좋게 나선 가족 외식인데 씁쓸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왔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달달한 커피 한 잔에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기분이 풀어지니 든 생각, 단골 냉면집을 하나 잃었으니 올여름에 갈 새로운 냉면집을 하나 찾아봐야겠다! (결국 먹는 걸로 시작해 먹는 걸로 끝나는 사고의 흐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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