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에 소외받는 남자들을 위하여
“신부님~” 약간은 낯간지럽고, 어색했던 호칭이 점차 익숙해져 간다. 그만큼, 결혼에 있어 많은 일들이 진행됐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J는 결혼 준비의 모든 것을 함께했다. J는 스드메를 결정하기 위해 플래너를 만날 때에도 옆에서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겨주는 세심함을, 드레스 가봉 시에는 단상까지 올라와서 보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지만, 적극적으로 살펴봐 줬다. 오죽하면 가는 곳마다 ‘옆에서 지켜보다 자는 신랑님들도 많으신데, 어머! 신랑님이 너무 자상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을까.
함께하는 결혼 준비, 정작 소외받는 남자들?
그러나 대부분 결혼 준비의 포커스는 신부에게 맞춰져 있기에, 상대적으로 신랑들은 소외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나 역시 상담을 받다 보면 J는 심심하지 않을까, 소외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미안해지곤 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오로지 J를 위한 예복에 더 신경 쓰고자 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J는 평소, 옷에 별 관심이 없다. 번듯한 몇 벌의 정장을 제외하곤, 대부분 청바지에 셔츠 정도다. 아! 물론 옷 자체가 많이 없다. 여름에도 3~4벌의 티셔츠만으로 데이트 장소에 나오는 J였으니. 어쩌면 그런 J였기에 더 챙겨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J가 정장을 사러, 투어를 한다니! 게다가 맞춤 제작을 해야 한다니! 내 드레스 투어에는 그리도 적극적이었던 J는 자신의 예복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손품 발품 판 리스트에서 2군데 이상은 돌고자 했던 나와는 별개로 J는 딱 한 군데만 돌아보자고 했다. 우리는 그 리스트 중 플래너님의 소개로 ‘라레토’를 추천받았다.
남자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 ‘라레토’
샵에 들어서니 클래식하고 깔끔한 내부 전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모던한 인테리어 속 진열돼 있는 정장, 셔츠, 구두, 가방 등은 전시회장을 방불케 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건, 라레토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서 수많은 프랜차이즈 형식이 아닌 매장 내의 자체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직 고객 한 사람만을 위한 패턴 제작과 비스포크 제작 기법을 사용해 한 벌의 슈트를 맞춤 제작하고 있기에 예약제로만 가능하다. 상담 및 가봉은 퍼스널 컨설트 룸에서 프라이빗 하게 진행받아 볼 수 있다.
슈트가 이리 섬세한 옷이었던가!
원단의 재질은 물론 핏, 소매, 바짓단의 디테일까지 오직 J를 위한 맞춤 예복 제작이 시작됐다. 오세민 대표님께서 이태리, 영국, 일본, 국내 등 다양한 원단과 소재, 디자인 등을 설명해주셨다. J는 턱시도 말고, 조금 특별한 날에 품격 있게 있을 수 있는 정장으로 맞춤 제작하기로 했다. 물론 본식 때 입을 턱시도와 리허설 촬영 때 입을 재킷들은 대여가 가능하다. 라펠, 암홀, 버튼, 바짓단의 디자인 하나하나 선택하는 데 1시간 정도의 상담이 진행될 정도로 남자 슈트는 생각보다 디테일했다.
디테일의 차이가 슈트 퀄리티를 완성한다
모든 원단, 재질, 디자인이 선택되면 제작을 위해 장인분께서 한 땀 한 땀 치수를 재주신다. J의 재킷은 이태리 토마스 브로스 원단으로, 차콜 그레이 컬러에 글렌체크 패턴이 가미된 원단이다. 색상이 다소 무겁고 중후한 컬러지만 글렌체크로 인해 조금은 유하면서 젠틀하고 신사다운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디자인은 더블 6x2 버튼으로, 더블 재킷답게 라펠을 피크트 하면서 조금 넓게 제작해 남성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또, 재킷 뒤트임은 양쪽으로 트임을 주어 좌우 밸런스를 안정감 있게 보이게 하면서 활동할 때 중앙에 있는 센터보다는 활동성이 좋게 제작되었다. 주머니는 기본 플랩 포켓으로, 뚜껑을 안쪽으로 넣으면 제티드 포켓 형태로도 활용이 가능하게 잡아주셨다.
바지의 경우, 후크만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옆에서 단추를 한 번 더 채울 수 있어서 캐주얼하게 벨트를 하지 않고도 착용 가능하게 제작되었다. 기본 신체 사이즈에서 여유를 조금 더 넣어 라인감과 활동성을 어느 정도 고려해 바지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슈트 입은 J, 근사하다
한 달여 정도의 제작 기간이 끝나고, 가봉을 하러 갔다. 가봉 후 완성된 슈트를 입은 J의 모습은 너무도 근사했다. 아니, 이 남자에게 이런 모습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고 하지만, 나는 ‘슈트가 매너를 만든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슈트는 매력 있다.
결혼식에 결코, 웨딩드레스만 중요한 건 아니다. 여기, 이리도 섬세한 슈트가 있다!
J가 맞춤 예복을 입고, 리허설 촬영을 했다는 건, 그만큼 결혼 준비의 상당 부분이 완성됐단 뜻도 된다. 그런데, 이 남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문득 J의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Q. 생애 첫 예복(슈트)을 맞춰 본 소감이 어떤가?
대만족이다. 사실, 고가의 예복을 맞춤으로 구매하고 잘 입지 않게 될까 봐 걱정이 있었다. 그런 우려 탓에, 턱시도 대신 실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는 일반 정장을 맞췄다. 원하는 디자인과 재질,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을 위한 사이즈의 슈트가 탄생하다니!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평소 입기 부담스러운 턱시도가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도 품격 있는 슈트를 편하게 입을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실용적인 결혼 준비의 한 예가 아닌가 싶다.
Q. 그렇다면, 맞춤 예복 제작 과정 중 불편한 점은 없었나?
알다시피, 평소 나는 옷에 많은 관심이 없다. 나이 때에 맞는 깔끔한 옷을 선호하지만, 대부분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입을 만큼 스탠다드한 체형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쇼핑을 하러 잘 돌아다니지 않아서인지 맞춤 예복을 진행할 때 재단, 가봉 등의 체크를 위해 3번 정도 방문하는 게 조금은 귀찮았었다. 그러나 완성품을 받아 봤을 때, 그동안의 귀찮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웃음).
Q. 이건 예복 맞춤 칼럼에 대한 것과는 다른 예외 질문이다. 결혼준비를 하며, 많은 준비단계를 거쳤다. 어떤 생각들이 스치는가?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하나하나의 과정을 거쳐 벌써 이만큼의 결혼 준비도 끝냈다는 게 실감 난다. 이제 끝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결혼 준비가 행복하지만,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이라 그런가 준비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결혼이란, 단순히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해서 준비하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닌, 아직은 가족과 가족끼리의 밀고 당기는 숨 막히는 줄다리기인 듯하다. 둘만의 의견으로만 모든 걸 준비할 수 없다 보니 어느 부분에선 비용, 시간, 스트레스 등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직 한국 결혼 문화에 많은 변화가 있어야 될 것 같다.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때 결혼은 여자를 위한 하나의 거대한 파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가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껴야 하는 그런 파티랄까(웃음).
Q. 결혼 준비의 상당 부분에서 여자에게 관심이 집중돼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아니다. 한국 결혼문화의 큰 틀에서 바라본 모습을 말한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들이 다시 경험하지 못할 추억이 될 테고, 내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말하지 못할 행복감을 느꼈기에 불만은 없다. 우리의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늘 감사해하고 있고, 결혼 준비를 하며 지쳤을 때도 서로 다독이는 모습을 보고, ‘우린 참 잘 만났다’를 느꼈다. 사실, 지금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빨리 신혼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이다. 다녀와서 아이도 낳고, 오손 도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뿐이다.
생각보다 진솔한 J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 조금 놀랐지만, 이 사람도 복잡한 결혼 준비에 내심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구나란 생각을 하니, 어째 좀 맘이 짠해진다.
나의 가장 좋은 벗, J에게 ‘앞으로도 가장이란 이유로 무거운 짐 혼자만 지고 가게 하지 않을게. 우리 함께 나눠지면 좀 더 가볍지 않을까? 그리고 힘들 땐 기대도 좋아! 아주 가끔은 큰 소리로 울어도 괜찮구! 뭐 어때~ 나도 그럴 건데, 우리 함께 걸어 나가는 거야. 늘 고마워!’
에디터. HJ
Special Thanks to
상담_라레토 대표 오세민, 가봉_점장 한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