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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11. 2019

상견례가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양가 부모님과의 상견례

원래가 어색하고 어렵다는 상견례, 거기에 국제결혼을 한 우리에게 이 자리는 사실 쉽지 않은 자리였다. 


부모님께서 도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와 남편, 그리고 시댁을 배려해서 상견례는 도쿄에서 치르자고 먼저 말씀해주셨다. 정말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딸의 남편 되는 사람과 그 가족을 만나기 위해 먼 일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신 부모님.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 자리를 어떻게 무사히 끝낼지 결혼을 앞둔 우리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2월 상견례를 앞둔 후,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어디서 상견례를 치를지, 부모님 호텔은 어디로 잡을지 준비해야 할 것이 참 많았다. 하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언어가 다르니 내가 통역사가 돼서 이야기를 잘 전달해야겠구나'라는 각오도 단단히 했다.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겨울, 도쿄에서 상견례가 시작되었다.


어머나, 어머님 그건...

상견례를 한 곳은 도쿄역 근처에 있는 일본식 정식요리 집, 가이세키 요리 음식점이었다. 남편이 사전에 직접 와서 분위기와 점원의 응대 등을 체크한 후 예약한 곳이라고 했다. 가게 안은 깔끔했고, 기모노를 입은 점원들의 상냥한 응대가 기분 좋은 곳이었다. 안내받은 별실에 양가 여섯 식구가 자리에 앉았다. 방 안 가득히,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예비신부 겸 통역사인 내가 먼저 나서서 가족 소개를 하려던 그때, 갑자기 시어머님께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셨다. 


"오누루운, 몬 기루 오시누라 수고하쇼스무니다. (오늘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기에, 우리는 깜짝 놀라 시어머님을 바라보았다. 


"죵마루 못지누 따니무를 감사하무니다. (정말 멋진 따님을 감사합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시는 시어머님께서 한국어로 인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조금이라도 한국어로 대화를 해 보시겠다고 며칠 전부터 준비하신 것 같았다. 시어머님 덕분에 미소가 피어났다. 컨닝 페이퍼까지 준비해서 대화를 하시려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따뜻했다. 그런데 말이다. 사건은 바로 이다음에 일어났다. 


"따님이 정말 죽여줘요." 


헉. 어머님... 그건... 갑작스러운 시어머님의 한 마디에 우리 부모님과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상견례 자리에서 "따님이 정말 죽여줘요"라니! 어머님께서는 "따님이 정말 멋집니다"라는 말이 하고 싶으셨다고 했다. 한국에서 ‘죽인다’가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에 대해 설명해드리자 시어머님은 너무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나는 웃음을 참기가 정말 어려웠다. 웃음은 전염된다 하지 않는가. 결국 여섯 명이서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박장대소로 시작한 상견례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어쩌면 조금 더 자식 자랑이 하고 싶으셨을지도, 시부모님께서는 깊이 나누고 싶었던 대화가 있으셨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모든 대화를 통역하는 나를 여러모로 배려해주셨다는 거다. 코스가 끝나가고, 마지막 디저트만 남았던 때였다. ‘다행이다. 무사히 끝나겠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이번에는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남편 처음 봤어 


집안 내력인가? 이번에는 남편이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우리 부모님을 향해 직접 썼다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도 참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 편지는 한국어로 쓰여있었고 남편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발음으로 편지를 읽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남편이 언제 이런 걸 준비했는지, 감동 그 자체였다. 


"아버님 어머님, 걱정은 이제 그만하시고, 행복한 부부가 되도록 제가 잘하겠습니다."


하나뿐인 딸은 타지에 보내 놓고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 부모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남편의 마음이 너무 곱고 고마웠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기쁘셨을까. 나중에 들어보니 회사에 있는 한국인 동료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어 발음까지 일일이 고쳐가면서 엄청 연습했다고 한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상견례 자리에서의 식사가 드디어 끝났다. 2시간 동안 긴장감 속에서 동시통역을 했더니 온몸에 힘이 쫘악 풀렸다. 그렇게 무사히 상견례가 끝난 줄 알았다. 


"2차 어때요?" 


이렇게 말을 꺼낸 건, 시아버님이었다. 2차? 상견례에 2차? 이제 겨우 끝났다고 안도했는데... 


"근처에 탁구 치고, 노래방도 딸려있는 데 있잖아. 거기 가는 게 어떨까?" 


우리 아빠를 생각해 꺼내신 제안이었다. 무려 30년 이상을 취미로 탁구를 치셨다는 것을 알고, 2차로 탁구를 치러 가자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긴자에 있는 BAGUS, 평소에는 친구들과 가던 이 가게가 설마 상견례 2차 자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체력은 고갈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막상 2차에 가고 나니 정말 좋았다. 시아버님, 나이스.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로 알기 어려운 부분을 우리는 국경 없는 스포츠로 대체했다. 시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 탁구대 앞에 마주 서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다. 아빠도 아마 엄청 기분 좋으셨을 거다. 


탁구를 친 뒤에는 같은 가게에 있는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설마 상견례 자리에서 시어머님과 듀엣곡을 부를 줄이야. 나카시마 미카의 눈의 꽃을 부르시는 시어머님의 가녀린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시어머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니 마음이 하나로 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차까지 보내고 난 뒤 상견례가 드디어 끝이 났다. 긴장도 많이 했지만, ‘이게 상견례 맞나?’ 싶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렵게 격식 차리지 않고, 캐주얼하게 편안한 자리를 만들었던 게 성공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한국어로 인사말을 준비하신 시어머님, 한국어 편지를 준비한 남편, 그리고 언어를 뛰어넘어 우리 가족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신 아버님의 덕도 정말 컸다. 


나 하나 때문에 먼 길 오신 우리 부모님께도 물론 감사했지만, 여러모로 배려해주신 시댁 부모님과 남편에게도 정말 감사했다. 상견례 후 부모님 마음이 많이 놓이셨는지 매일 걸려오던 전화가 줄었다. 그만큼 안심하셨다는 것 아닐까. 이렇게 보면 정말 대성공이었던 상견례였구나 싶다.



가족이 되기 위한 첫걸음, 상견례  


상견례 후,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상견례는 가족으로서 함께 '시작'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남이었던 사람들이 가족이 된다. 상견례가 바로 가족 될 사람들을 처음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인 거다. 인사만 가볍게 하고 끝날 수도 있고, 곱게 키운 자식을 잘 봐줬으면 좋겠다는 부모님 마음에 자식 자랑 대회가 펼쳐질 수도 있고, 언젠가 신혼부부가 해야 할 어려운 문제(집이나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사실 이것도 우리가 가족이 되기 위한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하는 건 원래 다 그렇다. 긴장되고, 어렵고, 어색하고. 하지만, ‘가족이 되기 위해서 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다 소중한 추억이 된다. 쉽지 않은 자리였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난 상견례 자리가 너무 즐거웠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웃음이 넘쳐나는 상견례가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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