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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06. 2019

사랑하지만, 혼인신고는 꼭 해야 할까요?

한 장짜리 종이에 담기는 혼인신고, 정말 괜찮은 걸까

한때 젊은 여성들이 열광하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한 에피소드에서 여자주인공 캐리와 남자친구 에이든이 결혼 문제로 한바탕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녀와 서로 사랑하는데 가볍게 생각하자는 그의 대화 중심엔 서류 한 장인 ‘혼인서약서'가 있었다.


만약 상황만을 놓고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캐릭터 설명을 하겠다. 캐리는 미국 뉴욕의 독신 여성을 대표하는 칼럼니스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는 남자친구인 에이든과 행복한 연애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녀는 에이든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는다. 다만 막상 결혼을 주저하게 된다.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내면에 트라우마가 있는 그녀의 상황을 떠나, 요즘 같은 세상에 서로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느냐는 그녀의 외침을 보며 필자 또한 생각하게 됐다. 우리 부부 또한 혼인신고는 했으나, 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고민해서다.


혼인 신고만 미뤄온 지 1년


우리 부부는 2년 전 12월에 결혼했다. 그 사이엔 만 3년을 꽉 채워 연애했다. 모자랄 것 없이 사랑도 줘 봤고, 다른 커플만큼 치열하게 싸워보며 서로의 다른 점을 알아갔다. 서로에 대해 알 만큼 알았다고 생각했을 즈음 적당하게 날이 좋을 때를 골라 사람들을 초대해 그 자리에서 언약을 맺었다. 수많은 이들의 휴대폰에 고스란히 그 장면이 남았다. 전자기기뿐인가. 사진작가, DVD 촬영 작가, 주례를 생략하고 덕담을 나눠주신 아버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우리 결혼식이 기억됐다.


그래서였다. 굳이 ‘혼인신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서로가 상대의 배우자임을 법적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사실상 효력이 발생한다는 건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나와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준다는 어떠한 안도감을 채 느끼지 않아도, 그와 나는 서로 믿고 기대며 사랑한다. 그런데 굳이 혼인 신고가 필요한 일일까? 납득되지 않았다.


이직할 때에도 혼인 신고를 한 여성이라는 괜한 편견으로 인해 면접 기회를 놓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기혼 여성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면접자를 대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일부 주변인의 ‘아직 혼인 신고 안 했냐'는 소릴 들을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소리 또한 함께였다. 아이가 생기면 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 된다는 말. 이쯤 되면 다들 궁금할 거다. 이렇게나 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왜 혼인 신고를 했는지.



이유는 간단하다. 신혼부부 및 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된 부부들에게 주어지는 ‘청약’에 조금이라도 높은 순위로 당첨되길 바라서였다. 내 집 마련이 신혼부부에겐 어쩌면 두 사람이 처음 세우게 되는 큰 목표 아니겠나. 분했지만 우리 부부 또한 나라에서 제공하는 좋은 집에서 살아볼 기회를 얻고 싶어 혼인 신고를 했다. 참고로 청약 등 여러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하기 전부터 혼인 신고를 하는 예비 부부는 꽤 많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라에서 인정하는 부부가 되자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고 배우자의 직장 근처 구청서 우린 혼인 신고를 했다.


서류 접수자에겐 처음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처음’이잖아요


찬 바람이 쌩쌩 불던 날, 우리는 구청에 갔다. 혼인 신고는 2층에서 하시라는 안내를 받고 올라가니 우리 같은 신혼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서류 한 장을 보며 작성하고 있었다. 각자 이름을 적고, 결혼식 증인을 쓰는 것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왜 부모님의 사는 곳부터 본관을 써야 하는지, 한자는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적어야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둘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성을 쓸 때 어머니 성을 쓸 경우, 앞으로 이 점은 변함없다는 걸 확인하는 문항까지 있었다. 내 아이의 성을 결정하는 건 그때 맞춰서 결정하는 부모 아닐까, 왜 수십 년 전 국가가 정한 제도대로 따라야 하지 싶은 뾰족한 물음이 생겨났지만 우선 꼭 채워야 하는 것을 채워서 제출했다.


“여기 있는 거 다 쓰셔야 하는데.”

“네? 주변 신고한 사람들로는 굳이 다 쓸 필요 없다고 하던데요.”

“다 쓰셔야 해요. 그래야 접수됩니다. 집에 가셔서 다시 적어 오세요.”


어이가 없었다. 막무가내인 듯한 답변에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제야 포털에서 검색했을 때 ‘혼인 신고서 접수하러 가기', ‘혼인신고서 작성법', ‘혼인신고 도장' 등 여러 포스팅이 생각났다.

다만 시간이 없었다. 급한 대로 처음 적은 것보다는 정보를 채워 바로 옆 창구 직원에게 가서 제출했다. 그들 말대로라면 결혼식 증인에게 서약을 따로 받아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직원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빠르면 일주일 안에 접수될 거라고 했다. 혼인 신고와 제출까지, 장장 1시간이 걸렸다. 수고했다며 다독이며 그렇게 귀가했다.


출처 : 영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정말 그 서류에 책임감과 안도가 담겼을까


제출 후 5일 뒤, 우린 나라가 인정한 법적 부부가 됐다는 알람을 받았다. 듣고도 그냥 그랬다. 동시에 요즘 세상에 참 안 어울리는 절차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러길, 자본주의 사회에선 사랑을 독려한다고 했다. 교제를 하고 사랑하는 만큼 상대에게 시간과 돈을 들여 마음을 보여주기 때문. 실제로 그렇다. ‘요즘 같은' 세상이 낳은 N포 세대에게 연애와 결혼은 당연히 금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둘은 완벽히 자본주의 시스템이 낳은 결과물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힘들게 결혼을 했으면 차라리 혼인 신고도 어렵게 하도록 바꾸는 건 어떨까 하는 거다. 나름 중대한 결심을 하고 마주한 제도는 종이 한 장에서 그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갈라설 때 알 수있다는데, 그런 식으로 느끼게 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설계의 산물 같다. 어차피 이 힘든 세상에 결혼해서 상대방과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사니 ‘결혼’에 가까운 제도로 보완했으면 싶다. 다양한 사랑을 존중한다는 프랑스는 이미 그런 제도(PACS)를 두지 않았던가. 그리고 혼인 신고를 한 이들에겐 확실한 보상이 존재했으면 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 결혼해 혼인신고까지 마친 부부는 큰 결정을 하고 앞으로 발을 디딘 게 분명할 테니 말이다.


우리 부부는 어쨌든 혼인 신고를 했다. 앞으로 수십 년, 어쩌면 서류를 바꾸지 않는 한 이 맹세는 변함없을 거다. 그날은 다시 한번 종이 한 장으론 모자랄 세월을 함께 수놓기로 다짐하며 결혼식 때 한 언약을 들으며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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