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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18. 2019

나는 간다, 여행을 시댁식구와

법적 가족과 보내는 2박 3일 여행기

필자는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3년 차 며느리다. 두 번째 명절을 보내고 어느덧 세 번째 명절을 맞이한다. 아마 이번에도 예외가 없다면 가족들과 여행을 갈 것 같다. 여기서 언급하는 가족이란? 시부모님, 배우자, 그리고 남편, 여동생 부부를 뜻한다.


여행 얘기가 처음 나왔던 건 결혼하고 난 직후다. 필자와 연애하던 시절에도 배우자는 가족여행을 참 잘 다녔었다. 이들은 당일 훌쩍 떠날 때도 있었고, 꼼꼼히 계획해 해외로도 다녀왔었다. 그러니 이제 막 ‘가족'이 된 나에게도 동행을 제안하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큰집의 장녀로 살아와 연휴 기간에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했고, 여행 한 번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기에 두 분의 제안은 흥미로웠다. 


물론, 아직 친하지 않은 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큼 불편한 것도 없을 거다. 게다가 그때는 팔을 다쳐 몸 또한 자유롭게 쓰질 못했다. 여러모로 상황이 좋진 않았다. 그럼에도 다녀와 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2박 3일, 명절 연휴의 여행을 처음 해봤다.



따로 또 같이 2박 3일을 보낸 6인, 세 부부


“여행은 같이 왔지만, 당일 코스는 따로 다니는 걸로 하자. 너희만 다니고 싶을 수도 있듯 우리도 둘만 다니고 싶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 아버님께서 우리 넷을 두고 선언하셨다. 실제로 아버님께선 여행 전 다닐 곳을 미리 정해 두셨다고. 다만 우리가 같이 가고 싶지 않을 곳일 수도 있으니 강요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시아버지이기 전 어쩜 이렇게 센스가 있으신 거지 싶어 감동했다.


이 말은 그다음 날부터 실제로 이뤄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두 분은 먼저 나가 숙소 주변을 돌고 오셨다. 모든 이들을 일일이 깨워 아침을 먹자 채근하지도 않으셨고, 하이킹을 다니자며 권유하지도 않으셨다.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난 뒤엔 각자가 알아본 장소를 다니며 따로 여행했다. 물론 알아본 장소가 같을 때도 있었지만 동행하기 위해 무리하진 않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온 자리에선 각자 다녀온 곳을 얘기하며 편히 쉬었다. 귀가하기 전날 밤, 아버님께선 ‘우리 여행에 너희들을 끼워준 것’이라며 호쾌하게 웃으셨다. 말씀대로였다. 두 분의 여행에 우린 숟가락을 얹어 아무 걱정 없이 재밌게 여행할 수 있었다. 



모두가 배려하니 다 좋은 여행이었다



“그런 여행이 재밌을 것 같아?”

“용기가 대단하다. 어떻게 같이 간다는 말을 했어?”


당시 명절 연휴 계획이 어떻게 되냐는 이들에게 시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면 들은 답변이다. 당사자 생각만 하면 자못 당연하게 들을 만한 대답일 테다. 아마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필자 또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선 그렇게 보인다. 다만 여기엔 대부분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조건이 존재한다. 물리적 환경은 존재하되 구성원의 배려가 있었기에 평화로운 여행이 됐던 것 같다.


만약 시부모님께서 ‘옛날식' 어른이었으면 어땠을까. 팔이 불편하니 소파에 앉아 쉬어라, 식사 준비는 우리가 하겠다는 말씀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을 듯싶다. 혹은 정말 앉아있을 때 ‘정말 수저 하나 안 놓네'와 같은 한 소릴 하셨다면 며느리이기 전 아랫사람으로서 마음이 불편해졌을 거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따로 다니자는 말조차 듣고 나서도 당황스러웠다. 필자의 가족이었다면 사실 상상하기 어려웠을 일이다. 가족여행이면 가족이 같이 다녀야지! 너무 당연한 논리 아닌가. 다만 두 분은 법적 가족이기 전 두 사람끼리 멀리 와서 많은 추억을 쌓아가길 바라셨다고 했다. 참 멋진 생각이다. 그렇게 손수 먼저 해주시면 아랫사람은 알아서 따를 수밖에 없다. 


사실 배려는 여행 전과 다니는 중에도 계속되었다. 배우자의 여동생, 그러니까 시누이는 팔이 불편하니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냐며 진지하게 몇 번을 권유했다. 여행 중에도 몸이 불편하니 집에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으니, 새언니가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쿨하게 보내 주라며 부모님께 말하기도 했다.


이 기묘한 여행을 떠나보면서 느낀 게 있다. 고부 갈등 등 상호 갈등은 이해와 배려가 있다면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의 이해는 모든 구성원이 가족의 형태를 2가지임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두 어른은 사위와 며느리가 법적 가족이지만 당신 자식의 새로운 가족임을 정확히 아셨다. 이에 진심 어린 배려를 하셨던 듯싶다. 여동생 또한 자신이 편하기 전 또 다른 ‘며느리'의 상황을 알고 먼저 편의를 봐줬다. 우리는 무리 없이 즐겁게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명절에도 아버님이 계획하신 여행에 네 사람은 묻어갈 예정이다.






갈등없는 평화로운 결혼 준비, 웨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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