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Feb 21. 2019

늦게 결혼하면 손해?

결혼식에 부르기 애매해진 관계에 대하여

“모바일로 보내줘”


예전 회사 동료에게 문자가 왔다. 그 동료는 사내 봉사동아리까지 함께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는데, 30대 초에 결혼해 벌써 애가 5살이다. 당연히 동료의 결혼식, 돌잔치에 빠짐없이 달려갔다. 밥 차리느라 이제야 문자를 읽는다며,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얼마 전 청첩장이 나왔다. 근거리 사람들이야 웬만하면 직접 얼굴 보며 청첩장을 전해주면 된다. 게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청첩장을 열어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이런 청첩장 처음 받아본다’, ‘그동안 많은 청첩장을 받았는데, 진짜 역대급이다’ 등의 감탄부터 ‘청첩장에 돈 쓰지 말라니깐’ 등 반응하는 모습도 제 각각이다. 청첩장 부심이 절로 생기는 요즘이다. 


그런데 어쩌나! 결혼 한 달 남은 시점에,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청첩장을 조금 늦게 만든 오류가 여기에서 드러났다. '결혼 2~3개월 전에 여유롭게 청첩장을 만들어 모임 때 들고나가면, 시간 단축은 물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전해줄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에디터의 청첩장 디자인]


모바일 청첩장, 그 예의에 대하여


그 사이 모바일 청첩장도 완성됐다. 모바일 청첩장만 전해주는 것은 자칫 실례일 수 있기에 어떤 방법으로, 어느 선(사이)까지 전달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하루가 멀다 전화하는 절친들이야 이미 나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종이 청첩장은 우편으로 붙이고, 모바일은 카톡으로 가볍게 전송했다.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내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고, 부를까? 말까? 고민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오랜 벗 일수도 있고, 대학교 선후배일 수도 있고, 예전 회사 동료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지점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몇의 부재를 제외하고는 전화를 받는 사람들과는 꽤나 오랜 통화를 했다. 근황에서부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모바일만 딸랑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전화까지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바일 청첩장만 보내도 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무례하게 뿌리는 모바일 청첩장을 받아본 입장에서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청첩장을 전하고자 했는데, 사람들은 모바일의 편리함이 싫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통화가 끝난 후 ‘직접 만나서 전하는 게 맞지만, 빠듯한 일정으로 이리 메시지 보냄을 해량하여 달라’는 전문이 포함된 정성스러운 모바일 청첩장을 보냈고, 여기저기 축하 인사를 받았다.



애매해진 관계에 사람들

여기서 문제는 예전엔 친했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나는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몇 년 새 연락 못한 사람들. 즉, 관계가 애매해져 버린 사람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스쳤다. 한 여름 살이 타들어갈 것 같이 쏘는 태양에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동기 중 처음으로 결혼하는 친구라 무척이나 설레며 갔던 기억, 아침 일찍 있는 지방 결혼식이라 친구와 하루 숙박까지 했던 기억, 기차 좌석이 없어 부산까지 서서 갔던 결혼식의 기억도. 고생하며 갔던 결혼식일지라도 언제나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그렇지만 이미 강산이 한번 이상 바뀐 세월 동안 우리의 관계는 휘발되어 있었다.


이렇게 애매해진 관계의 사람들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부를까? 말까? 고민된다면 부르지 않는 쪽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뿌린 돈 거둔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낫다. 먼저 결혼한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해준 것만으로도 나 역시 행복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결혼식 이후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혼하는 입장이 돼보니, 이해도 되지만 한편으론 각박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는 처음 엄마가 되어서, 누구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서, 누구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등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느라, 결혼 축하 따위 사치가 된 이들도 있으리라. 나 역시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느라 바빴으니 이해한다.


그보다 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사람들, 어디서라도 달려와 축복을 빌어줄 사람들에게 어떻게 감사함을 전할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고마운 사람들이 스치는 밤이다.



에디터. HJ






에디터. HJ의 결혼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