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Aug 23. 2018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 구분하기

내 사람 유무를 따질 수 있다는 '결혼 청첩장'에 대하여

한 장의 종이인 청첩장, 왜 이렇게 만들기 복잡한 걸까


하얀 봉투에 들어있는 청첩장을 보기 위해 작은 스티커를 뗀다. 결혼식에 와 주십사 바라는 평범한 글귀와 결혼식 시간과 장소가 적힌 정보, 각자 가족관계가 적혀 있는 이 한 장의 종이를 바라본다.

둘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한, 모나지 않은 예쁜 디자인의 청첩장엔 부모 이름이 적혀 있다. 부모님 성함이 세련 됐거나 특이하면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 정도다. 결혼식 당일에 청첩장을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좋아져서 모바일 청첩장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만들기 전까진 몰랐다. 청첩장을 만드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드는 줄!



청첩장은 주로 결혼 3개월 전 제작해 2달 전부터 친구 및 지인, 은사님께 전해진다. 그나마도 ‘청첩장 언제 줄 거냐’는 말에 뒤늦게 만든다. 청첩장에 그렇게까지 큰 신경을 쓰고 싶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신경이 쓰인다. 청첩장의 종이 재질부터 디자인, 심지어 글귀 작성 (선택) 및 내용이 틀리지 않았는지 모두 우리가 결정하고 확인해야 한다. 우선 글귀는 바쁜 신랑신부를 대신해 업체는 예시 문구를 몇개 알려준다. 거기서 고르면 된다. 하지만 종종 나처럼 글이 특별했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은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단어를 바꿔서라도 청첩장 문구를 작성한다. 이왕 청첩장을 만드는 데 있어 종이도 꽤 좋았으면 싶다. 1장에 600원짜리 청첩장과 복잡한 레이저 커팅을 통해 제작되는 2천원짜리 청첩장엔 큰 차이도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청첩장은 ‘어르신’의 의견도 필수다. 양가 어르신들이 보기에 다소 화려하고, 경망스러운 것들은 애초에 리스트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나마 같은 지역에서 결혼할 땐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하는 경우 타는 장소부터 몇시에 타야 하는지 모든 정보를 기입해야 한다. 그리고 어른들께 확인 받아야 한다. 그렇게 만들고 나니 이제는 몇장을 제작해야 하는지 고민 된다.


우리는 양쪽 집안의 ‘장남.장녀'다. 두 집안 모두 대대적으로 청첩장을 돌리겠다 일찍이 선언하신 바 있다.

결혼식장의 예상 인원을 500명으로 잡아둔 상황이다. 청첩장을 500장 해야 할지, 550장 해야할 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100장은 남았다며, 예상 인원보다 적게 제작하라고 조언했다.

과연 그럴까? 묘하게 반발심도 생겼다. 내 결혼식에 초대한 사람이 100명이나 안 온다는 소리 아닌가. 믿기 어려웠다. 다만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묘하게 수긍은 갔다. 그리고 식이 끝나면 한낱 종이로 버려질 청첩장이 아까웠다. 500장을 인쇄해야 할지 고민 됐다.


결국 우리는 두 사람의 의견을 조율한 끝에 모두의 하객을 고려해 ‘400장’을 제작했다. 매주 약속을 잡아 하루에 많게는 3번씩 모임을 가지며 청첩장을 배부했고 동시에 결혼 ‘턱’ 을 냈다.



축하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순간 ‘멈칫’한 당신에게


청첩장을 제작한 뒤 여러 개 고민이 몰려왔다. 1)누구에게 주지 2)이걸 받으면 그들이 좋아할까였다.

사실 청첩장이란 게 그렇다. 받고 나면 가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이 든다. 그날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꼭 가야 한다. 받는 입장이 그런데 주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는 너무도 큰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만약 내가 주고 싶은 사람과 마음의 깊이가 다르면 어쩌나 고민이 됐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아는 친구들에겐 오히려 주기가 쉬웠다. 문제는 ‘업무적으로’ 알게 된 사이였다. 또한 예전에 친하다가 요즘 들어 연락이 뜸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염치를 따지는데, 주고 괜히 욕먹는 게 싫었다. 고민이 돼 어떤 분께 조언을 청했다. 그는 결혼 7년차로, 귀여운 딸과 예쁜 부인을 둔 가장이다.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하세요. 받고 난 뒤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와요.”


이 얼마나 간단한 명제인가. 공감이 갔다. 사실 사람 관계만큼 복잡한 건 없지만 동시에 단순한 건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결혼식장이 비좁아서, 혹은 부담스러워 할까봐 등 여러 이유로 사람 초대를 꺼리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다만 실제로 왔으면 하는 이들이 우리 인생에, 그리고 청첩장 인원 중 얼마나 차지할까? 그 어떤 결혼식엘 가도 신랑 신부 친구를 합쳐 100명 넘는 결혼식은 본 적 없다.


(많게는) 100명에게 청첩장을 주고 부모님이 드리는 청첩장을 제외하고서라도 많이 남았다. 그때부터 그냥 편히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식엔 예상 인원보다 5명 추가된 505명이 참석했다.



청첩장을 통해 우리는 인간 관계를 거른다...정말?


청첩장으로 사소하지만 큰 진리를 알았다. ‘청첩장’을 주는 게 부담스러운 이들은 돌이켜보면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물론 친하고 어색함으로 관계를 정의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어색하더라도 청첩장을 드려야 하는 관계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예상치 못한 관계는 청첩장을 드리지 않았음에도 먼저 연락 오고, 지인 편에 축의금을 보내거나, 어떻게든 축하 인사를 건넨 이들이 내 인생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청첩장을 받은 이들 중엔 별 다른 말 없이 불참한 이들도 있었다.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축하를 건넨 이들에겐 놀라움과 고마움이, 참석하지 않은 이들에겐 실망보단 사정이 있겠거니 수긍하게 됐다.


그래서 느꼈다. 결혼식은 인간관계를 새롭게 가늠해 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지만 청첩장이 내 인간 관계를 정의하고 정리하는 100%의 매개체가 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또한 결혼한 뒤 알게 된 새로운 인연도, 결혼 전부터 알고 있던 오래된 인연 모두 소중하긴 마찬가지다. 이는 결혼식을 치른 우리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청첩장을 주고, 결혼을 알린다고 해서 상대방이 느낄 부담감은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사소한 의미 부여는 하지 않았으면 싶다. 청첩장을 받은 뒤 결혼식에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온다. 또는 주지 않아도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어쩌면 결혼한 뒤 살아갈 날이 더 길다. 알아온 세월동안 알고 지낸 이들보다도 더 많은 이들을 만날 기회가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혼식엔 양가 부모, 그리고 당사자를 축하해주기 위해 최소 1시간은 준비한 이들이 온다. 그들에게 감사 인사하는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청첩장은 내용을 기록해 둔 한낱 ‘종이’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기억한다. 기록이 담긴 종이가 내 인생을 전부 대신하지는 않는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혼자 준비하지 말아요. 같이해요!

즐거운 결혼 준비를 위한 한 걸음, 웨딩해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들이 청혼을 받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