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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22. 2019

부부가 같은 성(姓)을 따른다는 것

외국인 며느리가 바라본 일본의 부부 동성(同姓) 제도

엄마! 엄마는 왜 나랑 성(姓)이 달라?


어린 시절, 나는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의 대답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원래 그래’에 가까운 답변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와 나, 동생은 모두 같은 성씨인데 엄마만 다른 성씨라는 게 어린 나에게는 의문이었고, ‘엄마도 우리랑 같은 성이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린 내게 있어서 왠지 우리 엄마만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부부가 같은 성을 따라야 한다는 법률이 있는 일본 


나는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을 거쳐 일본 남자와 결혼했다.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 그런데 이곳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법률이 있다. 바로 남녀가 결혼하면 남편 혹은 아내가 같은 성씨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이다. 나와 남편은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남편과 같은 성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주변의 일본 친구들은 모두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다. 어제까지 ‘다나카 아야카’였던 친구가 결혼을 하더니 갑자기 ‘이케다 아야카’가 되는 것이다. 혼인의 성립 조건에 이름이 바뀐다는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 상식으로는 신기할 따름이다. 오랜 친구들의 이름을 바꿔서 불러야 한다는 게 아직도 영 어색하다. 



외국인 며느리의 입장에서 본 패밀리 네임 


결혼을 약속하고 처음으로 시댁에 갔던 날, 그날 느꼈던 묘한 감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남편, 남동생, 여동생,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시할아버님과 시 할머님까지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가족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같은 성을 쓰고 있었다. 집에 전화가 걸려오면 시 할머님은 수화기를 들고 “○○家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충격이었지만 같은 성을 쓰고 있는 대가족을 본 나의 첫인상은 ‘따뜻하다'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성을 쓰게 된다는 게 왠지 로맨틱하게 느껴졌고, ‘우린 가족이야'라고 인정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우리 엄마는 나랑 성이 다를까'라는 어렸을 적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을뿐더러 엄마와 아이가 같은 성을 쓴다는 게 그저 좋아 보였다. 





결혼을 하기 위해 처리해야 할 수두룩한 서류 


‘외국인이어서 다행이다’라고 느낀 건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였다. 사실 성이 바뀌는 건 그저 로맨틱하고 따뜻한 문화가 아니다. 일본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처리해야 할 서류가 정말 많아진다. 결혼하기 전 이름으로는 더 이상 본인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등록된 정보를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통장부터 신용카드, 주택 관련 서류, 운전면허증, 기타 등등… 이러한 개인 정보를 한 곳에서 보관하고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니니 결혼과 함께 이름이 바뀌면 이 모든 정보를 수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부부가 같은 성을 써야 한다는 것뿐이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의 성을 따라도 괜찮지만 대부분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른다.) 



집과 직장에서 다른 성을 쓰는 일본 여성들 


증명 서류는 그렇다 치자. 직장에서 지금까지 쓰던 성도 바꿔야 하는 걸까? 일본의 결혼 정보 매체 Zexy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예전 성을 써도 문제가 없다고 답변한 여성은 약 70%이며, 결혼한 여성의 40%는 결혼 후 남편 성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직장에서는 예전 성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내 주변의 기혼 여성들도 직장에서는 예전 성을 쓴다. 직장 내에서 성을 변경하게 되면 회사 이메일 주소를 바꾸고 거래처 사람들에게 새로운 명함을 돌려 인사도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3 커플 중 1 커플이 이혼한다는데, 결혼과 이혼할 때마다 이메일 주소가 바뀌면 확성기로 ‘나 이혼했소'라고 선전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일본인이었어도 회사에서는 예전 성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부부 별성(別姓) 선택 제도?


‘부부 동성 제도는 여성 차별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법률을 바꾸고 부부 별성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요즘 자주 들려오는 목소리다.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패밀리 네임이 존재하고, 결혼을 하면 대부분의 여성이 남편과 같은 성을 쓴다. 그런데 왜 일본의 부부 동성 제도만 유독 이슈가 되고 있는 걸까. 바로 부부가 같은 성을 따르지 않으면 결혼 자체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 울며 겨자 먹기로 성을 바꿀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시대의 변화와 국제 사회의 목소리에 일본 법무성은 수년에 걸쳐 부부 별성 선택 제도에 대한 법률 재편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는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부부 별성 제도 도입에 관한 검토가 어느새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관습처럼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성(姓)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가 보다. 



때때로 패밀리 네임


우리 부부가 다른 성이라는 걸 아는 일본 친구들은 사실 많지 않다. (앞서 말했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결혼을 했기에 난 여전히 부모님께 물려받은 내 성과 이름을 쓴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부부가 다른 성으로 살아가는 게 어려움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 부부가 함께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시댁 모임에 갈 경우에는 편의상 남편 성을 쓸 때가 있을 정도랄까. (본명은 아니지만 통성명으로서) 만약 다른 일본 여성들도 부부 별성 선택이 가능하다면 나처럼 때때로 패밀리 네임을 쓰는 정도의 여성도 많아질 것이다. 가족의 형태도 다양화되었으니 어떤 성을 쓸 것인지 개인이 선택 가능한 형태로 변화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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