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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pr 18. 2019

이민을 간다면 어떨까

결혼 새내기의 ‘시애틀’ 탐방기

필자는 만 1년 4개월 정도 된 신혼의 삶을 즐기고 있다. 지난해 12월 퇴사했고, 현재는 한 회사에 재입사해 근무 중이다. 3달간 쉬던 중 미국 시애틀에 다녀왔다. 시애틀에 다녀온 이유는 단순하다. ‘이민' 고려 지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결혼하기 전부터 해외 이주를 꿈꿨다. 이른바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어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경쟁에만 몰두하는 데 지쳤다. 상향 평준화되어가는 세상에 아이를 내몰고 싶지 않았다. 요즘 들어 더욱 심각해진 도시 공해 문제도 한몫했다. 앞으로 더욱 나빠질 일만 생길 거라는 카더라식 뉴스에도 마음이 흉흉해졌다. 


게다가 자녀가 없을 때 떠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자리 잡은 뒤에 낳은 아이는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그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여겼다. 다만 당장 떠날 수는 없다. 현재 미국은 이민을 가기에 매우 어렵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거라 장담할 수 없다. 친인척에게 초청받아 이민을 오는 경우도 요즘은 쉽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취업비자를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부부 모두 해외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자격증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애틀은 이민을 간다면 도전해 볼 수 있을 만한 지역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미국 1위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 본사가 위치해 있다. 게티이미지, 드롭박스, 스냅챗 등 각종 IT 기업의 본사 및 지사가 몰려 있어 일을 구하기에도 상대적으로 쉽다. (고려 조건은 아니었지만) 동양인이 제법 많이 살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적응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미국 내 살기 좋은 도시 TOP 10안에 뽑힐 만큼 검증된 곳이기도 했다. 며칠 만이라도 그곳 분위기를 느낀다면, 앞으로 우리 부부가 해외 이주를 할 시에 많은 참고가 되겠구나 싶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시애틀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시애틀의 (무서워) 잠 못 이루는 밤'


시애틀은 영화와 커피가 유명하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가 그것. 게다가 물이 맑고 좋기로 유명해 양조장도 많다. 수제 맥주를 즐기는 필자로서는 더없이 행복했다. 커피를 마시며 영화를 보고, 밤엔 맥주로 마무리하는 하루하루를 기대했다. 다만 즐거운 상상도 잠시,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고 길을 나선 지 10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거리엔 술과 약에 취한 노숙자가 정말 많았다. 이들은 떼로 몰려다니거나 거리에 앉아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혹은 관광객에게 돈을 달라며 적선했다. 혹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겁이 잔뜩 났다. 알고 보니 인근 지역인 ‘포틀랜드'에서 끊임없이 유입된 것이라고. 시애틀은 대마를 허용한 지 3,4년 됐다고 한다.  현지에 거주 중인 지인은 최근 그사이에 이들이 급격히 늘어 도시의 문제가 되고 있다며, 해가 지면 혼자 길거리를 다니지 말라고 조언했다. 결국 아침 일찍 일어나 최대한 여기저기 다녀본 뒤 오후 5시 내로 귀가했다. 혹시 모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영화에선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한껏 낭만적인 지역이었는데, 부랑자들 때문에 무서워 야경도 제대로 구경을 못 한 게 아쉬웠다. 


[호텔에서 찍어본 시애틀의 야경 사진]


여성,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가 살기는 좋은데...


고작 며칠 다녀왔다고 해서 이민 여부를 논하긴 어렵다. 다만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시애틀은 서울보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여유롭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간단한 예절도 꼭 지켜지는 편이다. 영어에 익숙지 못한 이방인에게도 친절하다. 이 점은 꽤 중요한데,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부담감이 큰 필자에게 약간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유색인종도 많은 편이다. 시애틀 시가지로 향하는 기차엔 ‘차별을 당했을 때 주저하지 말고 신고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양성과 존중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을 탈 때에도 마찬가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걸음이 불편한 노약자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다니며, 승하차시엔 운전기사 및 시민이 그들의 이동을 돕는다. 흐린 날만 빼면 날씨도 좋은 편이고, 큰 쇼핑몰도 도처에 존재한다. 직업만 제대로 갖추면 살기 좋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꽤 큰 틀에서 다시 생각해보기에, 모국에서의 삶을 과연 포기하면서 올 가치가 있는 곳인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했다.


[시애틀 시민이 찾는다는 Gas Works Park]


이 곳에선 무조건 집과 차가 있어야 한다. 차가 있으면 평소에 홈리스와 마주치지 않고 거리를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이 시내 중심가에 있다면 차로 출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주차구역이 전무하다시피 해서다. 시애틀에 사는 주민들은 가까운 지역에 차를 대고 대중교통으로 환승해 출근한다고 했다. 살인적인 집값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방 하나짜리 원룸(스튜디오)을 임대할 때 한 달에 약 3천 달러를 내야 한다고. 이것도 꽤 저렴한 비용이란다. 시내에서 방 2개짜리 신축 아파트를 사는 이들은 주로 세계적인 IT기업의 간부 정도라고 했다. 


조깅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뛰는 것이겠지만, 의료보험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와 비교하게 됐다. 도시 기준 건물마다 피트니스센터, 병원이 포진해있는 우리나라는 참으로 살기 좋은 곳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론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외모가 비슷한 동양인은 많지만, 분명히 다른 인상을 받았다. 시애틀에서의 한국인은 혼자라는 생각이 계속 들 정도로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다. 동시에 인도인과 한국인 등이 조성한 ‘학구열' 때문에 시애틀 특정 지역은 대치동처럼 학원이 유명하다고 했다. 여기서도 경쟁은 치열했다.



‘혼자’가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겠더라


이민을 가기 위해선 최소한 확실한 기술력 보유, 충분한 초기 비용,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내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니 스스로가 흥미로웠다. 지금껏 꽤 외로움을 즐겼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번에 남편 없이 혼자 떠나온 것이고, 촘촘히 지역 답사를 했다. 중학교 때 미국에 건너가 현지에서 회사에 다니는 지인과 만나 일상 얘기도 들었을 때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시애틀에서의 즐거움이 한국의 가족, 친구들과 즐긴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돌아와야 할 곳’이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는다면, 적어도 스스로 결심한 해외 이주에 의미가 없을 듯싶었다. 그 마음이 생기니 국가가 제재하는 지역이 아니라면 어디든 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향후 몇 년 간은 ‘여행'으로 해외를 갈 것 같아서다. 여행엔 나의 배우자, 가족, 친구가 함께 하지 않더라도 돌아오면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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