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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21. 2019

결혼식 날 쓰러져 버린 신랑,
울지 않던 신부

어떤 결혼식 이야기

결혼식 날 ‘쓰러진 신부’를 본 적 있는가?


장내는 아수라장이고, 모두가 손을 꼭 붙잡고 걱정하며 신부가 깨어나길 바란다. 얼굴이 창백한 신부의 손을 꼭 잡고, 침착하게 ‘괜찮아', ‘부끄러울 것 없어' 하며 끊임없이 신부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얘기하는 신랑. 

위 이야기에서 필자가 겪은 실제 사례와 다른 게 있다면 쓰러진 건 ‘신랑'이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다녀온 한 결혼식을 얘기하고자 한다.



"신랑님, 정신 차리세요!”


때는 3월 말, 점차 꽃샘추위가 사라지고 모란이 움을 틔우려고 하던 때였다. 필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신랑의 하객으로, 공통으로 아는 친구 2명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하는 신랑의 성격은 매우 진중한 편이었다. 매사 진지한 태도로 삶을 대하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진행한다고 할 때 우린 다소 놀랐다. 모두가 다 하는 결혼식 매뉴얼대로 결혼할 줄 알았기 때문에서다. 


‘웬일이야. 결혼식 빨리 끝나서 식사도 빨리 할 수 있겠네!’ 한창 배고팠던 우리는 결혼식 순서가 줄어 기뻤다. 

다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혼인 서약문이 일반적인 부부가 작성해 읽는 것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 ‘역시 그 답네!’하던 우리는 점차 혼인 서약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손으로 일일이 썼을 거라 확신한 내용의 깊이에 감탄했다. 


신랑은 서로를 대하는 자세, 삶을 대하는 자세 등 2개의 주제로 나눠 하객 앞에서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여러 각도에서 결혼을 고민한 듯 보였다. '정말로 사랑이 1순위여서 결혼한 건가 봐'라며 우리는 얘기했다. 그들의 서약문을 들으며 내 결혼식에서의 혼인 서약문은 어땠는지 생각했다. 결혼 막바지에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여러 혼인 서약서를 참고해 우리 부부 상황에 맞는 내용으로 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결혼식 준비는 빡빡하고 정신없었어도 사랑해서 결혼한 건 맞는데 비교적 정성이 부족한 건가 하는 작은 후회감이 몰려왔다. 혼인 서약 이후 이어진 예물 교환이 차례로 끝났다. 결혼식 사회는 신랑의 축가를 알렸다. 



바쁜 와중에 축가까지 연습했다니 모든 결혼식에 그의 진심이 닿지 않은 곳이 없구나. 김동률의 노래를 열창하며 핏대를 세우는 그를 보며 우리는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 가수 뺨치진 않아도, 진심을 다해 정성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뒤이어 신부 측 축가가 계속됐다. 성악가인 신부의 직장 동료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신랑은 땀을 닦으며 결혼식 도우미에게 물을 요청했다.


‘픽.’


순간 180에 육박하는 그가 힘없이 버진로드에서 쓰러졌다. 모두가 정말 놀라면 악 소리를 내지 못하는구나 그때 알았다. 장내 모든 이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이 상황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식장 도우미들 여럿이 식장을 들락날락하며 베개와 물을 가지고 왔다. 이제 막 부부로 첫걸음을 내디딘 두 사람을 보며 눈물짓던 각 어머니들은 ‘조금 뒤엔 정신을 차릴 테니 기다려주세요’ 하며 하객을 진정시켰다. 


우리가 놀란 건 신부였다. 거구의 체격 좋은 신랑이 쓰러지면 놀랄 법도 한데 매우 침착하게 배우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마도 괜찮을 거라며, 다독이는 중이었을 거다. 그리고 정말 5분여 남짓 뒤, 신랑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하객 모두에게 사과하며,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 같다며 실례지만 앉아서 결혼식을 마쳐도 되겠느냐 물었다. 


결국 보타이를 풀고, 한결 편한 옷매무새를 한 채 그는 신부의 손을 잡고 앉아 축가를 듣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막 부부가 된 그들을 보며 천생연분이라며 축복했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고, 두 사람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모두와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며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건넸다. 



강인해 보였던 신부의 사정


훗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그 날 신랑은 긴장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쓰러졌단다. 빈 속에 긴장 상태로 고음을 내다보니, 몸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신부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 이런 경우가 일어날 수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담담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부인께서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그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그렇게 담담히 상대방을 챙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말에 그는 웃었다. 


“사실 결혼식을 끝내고 서로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저 스스로 결혼식을 망친 건 아닌가 하는 답답함, 동시에 결혼을 하자마자 아내에게 이런 일을 경험하게 했다는 미안함, 그럼에도 모두가 결혼식이 아름다웠다고 말해줘 감동이었다는 고마움이 뒤엉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가 말했다. 결혼식이 조용히 잘 끝났다면 그것대로 성스럽고 아름다웠을 일인데, 이날의 해프닝이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결혼식으로 변했다고. 동시에 신부의 강인함과 신랑의 진지함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어 인상 깊었다는 세간의 찬사가 이어졌다며 말이다. 


“실제로 아내는 강해요. 외유내강이란 말이 딱이에요. 제가 보지 못하는 면을 봐주고, 갖지 못한 요소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감싸주죠. 팔불출 같지만, 결혼해서 정말 행복합니다.”


천생연분이란 무엇일까.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어진 부부의 도리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정확하게 와 닿았던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 날의 결혼식을 보며, 서로의 진정한 반려자이자 배우자라는 의미를 깨달았던 것 같다. 


결국 결혼식은 식 당일날 얼마나 예쁜 드레스를 입고, 얼마나 많은 화환이 오갔는지와 같은 화려함이 빛나는 게 아니다. 그 날 신랑, 신부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는지를 하객에게 얼마나 잘 알릴 수 있느냐에 따라 결혼식은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신랑, 신부의 앞날에 찬란한 축복만이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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