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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12. 2019

'효도는 셀프'라던 결혼 전
내 입을 매우 치고 싶다

결혼식은 부모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했지만, 결혼 후 삶은 달랐다

먼저 결혼 전 나의 삶을 이야기해야겠다. 


자취를 15년 가까이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는 10년 이상 됐다. 주체적으로, 그것도 ‘혼자' 오래 살다 보니 누군가가 나와 내 삶에 관해 왈가왈부한다는 자체가 어색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부모님 의견을 묻지 않은 지 오래다. 직업적 영향도 큰 것 같다. 기자를 6년 가까이했고, 그 이후에도 독립적인 작업을 많이 해왔다. 뭐든 스스로 결정해왔고,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면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서 물어봤지만 ‘참고’만 했다. 결국은 내가 결정해야 나중에 누구 탓을 할 수 없고 후회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 인생의 방향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게 하는 건 내 기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다 뜯어말리는 상대여도 내가 좋으면 그만. 가끔 잘못된 선택을 하곤 했지만 내가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관계를 말하자면 나는 대부분의 남자 친구들과 동등했다. 언젠가 한 번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애를 해본 적 있지만, 결국은 내 삶을 살기로 선택하고 이별을 고했다. 


지금의 남편과는 꿈꾸던 ‘완벽한’ 연애를 했다. 무리하지 않는 연애. 누군가는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연애. 내 삶과 균형이 썩 잘 맞는 연애. 그런 건 처음 해봤는데 ‘정말 내 스타일이다’ 싶었다. 우리는 정말 사랑했지만, 각자의 공간이나 시간을 존중했다. 2년 넘게 연애하면서 서로의 집에 가본 적이 1-2번 정도밖에 안될 정도다. 일주일에 3-4번 이상 시간을 쪼개 만나긴 했지만 평일의 피로를 생각해서 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선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서로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평일에 부족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대신 여행을 많이 갔다.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가 시작되기 전에는 부모님이나 가족들에 대해 많이 알려고 하거나 선을 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우리는 연애를 썩 잘한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결혼해서도 그렇게 살 줄로만 알았다 


지난 편에서 자세히 풀어냈지만 우리는 연애했던 스타일대로 결혼식을 치러냈다. 과정은 무척이나 순탄했고, 독립적이었고, 우리다웠다. 지금도 좋은 기억이다. 혼자가 아닌 둘로 앞으로의 삶을 잘 꾸려나갈 준비를 마쳤었다. 


그런데… 이후에 반전이 있었다. 달라진 건 ‘남자 친구와 내가 따로 자취하던 살림을 합치고, 결혼식이라는 걸 했다’는 것, 그 정도 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결혼한 건 내 남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들까지 함께 넝쿨째 내 삶에 굴러들어 오는 것이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이다’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결혼 후에야 비로소 체감했다.  


결혼 후에도 우리의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이해받을 줄로 크게 착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결속'을 의무라고 생각하시는 평범한 분들이었다. 결혼 전에는 워낙 관여를 안 하셔서 잘 몰랐고, 우리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 뿐. 전에 하시지 않았던, 가족을 챙기라는 말들을 요새는 하신다. (내 기준에) 잦은 주기로 안부 연락을 받기 바란다거나, 없던 가족 행사가 생긴다거나 했다. 아이를 갖지 않느냐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처음엔 그게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져서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아직 옛 결혼 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렇다고, 독립적인 삶을 살던 사람들도 결혼하고 나면 집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말이다. 결혼 전까지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응원하다가, 결혼이라는 고리로 묶이는 순간 '그래도 결혼을 했으면~'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를 테면 양가 가족 대소사 챙기기, 싹싹하고 말 잘 듣는 며느리-사위 되기, 아이를 낳아 대 잇기, 돌아가신 선조분께 감사하기 등등. 결혼식 직전까지는 요즘 스타일대로 살았는데 결혼 후에는 과거로 타임워프 하는 셈이다.



우리 시부모님은 나와의 관계를 ‘종속’이나 ‘갑을’ 관계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움 당할 나도 아니지만, 예뻐해 주셔서 잘 지내고 있긴 하다. 어제까지는 남이다가 오늘부터는 가족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어색할 뿐.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무언가가 내 품으로 훅-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 아직 신혼 초반이라서 그렇겠지…??(골똘)  


남동생이 올해 9월이면 결혼하는데, 엄마가 그에게 벌써부터 “장남으로서 가족을 챙겨라"라고 하는 걸 봤다. 동생은 얼마 전까지도 우리 가족에게 철부지에 귀여운 잉여(?) 같은 존재였는 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참으로 똑같네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효도는 셀프'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매우 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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