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내가 그를 원할 때 그도 나를 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우리는 짝사랑에 상처 받거나 연인과 아픈 이별을 하기도 한다. 첫 단추부터 맞지 않는 인연도 가슴 아프지만 더욱 아픈 건 한바탕 불같은 사랑이 휩쓸고 난 후의 권태기이다.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많이 바빠?”
“응, 조금.”
“그래... 자기 전에라도 연락 줘.”
“먼저 자.”
흔한 모습의 이별이지만, 겪어도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아픔. 나는 널 여전히 이만큼이나 사랑하는데, 너는 왜 그렇지 않은 걸까. 결혼까지 생각한 사이였다면 상심은 더욱 깊어진다.
“너랑 미래를 같이 그려보고 싶어.”
“미안, 난 솔직히 모르겠어.”
물론 사랑의 종착지가 반드시 결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쪽이 결혼을 원할 땐 종착지가 정해지고 만다. 20대 후반의 남녀가 연애에 신중해지는 계기도 어쩌면 결혼이라는 종착지에서 망설이게 될 본인, 혹은 상대방을 고려하기 때문 아닐까.
같은 시기에 같은 생각을 하다
마음에 꼭 드는 사람과 결혼을 할 확률은 기적과도 같은 확률이라고 한다.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은 남자를 만나야 했지만, 20대 후반의 난 더 이상 연애가 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배우자 기도를 했다. ‘하나님, 하나님이 맺어 주실 사람이 있다면, 제가 한눈에 그 사람을 알아보게 해 주세요.’ 연애할 마음이 없다는 소리와 상당히 다른, 모순적인 기도였지만 그래도 그런 인연이 있다면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안목을 바랐다.
그러던 중 친한 동생에 의해 정말 원치 않던 미팅 자리(친목 도모를 가장한)에 반 강제로 끌려갔고,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물론 이 사람과 처음부터 결혼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 이 사람인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심쩍은 눈으로 그를 파헤쳐 보려 노력했다. 밑바닥까지 알고 싶은 마음에 싸움을 걸기도 했다. 사실 이런 노력은 서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긴 했으나 실제로 우리가 결혼까지 가는 데 큰 역할을 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은 시기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타이밍’이다.
무더운 여름, 작은 원룸에 살고 있던 그는 에어컨이 고장 났다며 내게 전화를 했다. 작게 난 창으로 선선한 여름밤 공기를 쐬며 한참을 덥다고 투덜거리다가 또 평소처럼 깔깔거리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캄캄한 방 안 천정을 바라보다가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같은 여름 나는 회사에서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불평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을 알았지만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너무 힘들다며 연락을 했다. ‘돈은 내가 벌게. 너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라는 그의 답장에 나는 단순하게도 결혼을 결심했다.
잘 어울리는 남녀 둘이 만났다고 해서 그 인연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결혼을 결심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마음이 일치하는 시기가 같아야 한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그 타이밍 말이다. 혹여 얄궂은 운명에 연인을 떠나보낸 아픈 기억이 있다면,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데엔 다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내 의지와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지혜이지 않겠는가.
분명한 건, 타이밍이 맞는 인연은 반드시 온다. 비록 그것이 정말 기적과 같은 확률일지라도 포기하지 말자. 그대들은 현재 연습 중인 것이다. 인생에 딱 한 번 올지도 모르는 그 기적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안목을 기르기 위한 연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