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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19. 2019

더블데이트, 그 무시무시한
함정에 걸려들다

나를 후려친 너, 잘 살고 있니?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던 그 무렵, 당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남자친구와 나는 소위 ‘꿀 떨어지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 CC였던 우리는 학교에서도 공강 때마다 시간을 함께 보냈고, 주말이면 요즘 핫하다는 곳에서 데이트를 하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어김없이 남자친구와 홍대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갑자기 울린 남자친구의 핸드폰에는 처음 보는 이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남자친구의 고향 친구. 그는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친구와 서울로 데이트를 하러 올라왔는데, 본인들은 서울 지리도 잘 모르니 시간이 되면 함께 더블데이트를 하자는 이야기를 건네 왔다. 사실 ‘더블데이트의 위험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라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비 오는 날, 서울 한복판에서 헤매고 있을 친구 커플이 안쓰럽다며 함께 데이트를 하자고 이야기했고, 나 또한 마지못해 허락을 해버렸다. 사실 단호하게 거절을 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나 또한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매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에 ‘2, 3시간만 잘 버텨보자’라는 생각으로 더블데이트에 임했다.



아… 그가 이렇게 몰상식한 사람이며 예의라고는 밥 말아 꿀떡 삼킨 사람인 것을 진작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나에게도 숨을 구멍이라도 있었을 텐데… 난 그 커플을 만나자마자 채 30분도 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편의상 ‘친구 커플’이라고 지칭하겠다)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만난 우리는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였지만 아직 공복 상태였던 친구 커플을 배려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친구 커플은 치킨집으로 들어갔고, 메인 메뉴와 맥주도 친구 커플이 모두 정했다. 사실 우리 커플은 둘 다 술을 전혀 못 했지만, 분위기상 그들이 주문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문한 메뉴가 나오는 동안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평화로움은 곧 깨지고 말았다.


남자친구의 친구는 본인보다 4살 어린, 이제 갓 20살이 된 새내기와 사귄 복학생 오빠였고, 여자친구에게 “넌 손 절대 쓰지 마! 내가 다 먹여줄게”라며 치킨 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고 온갖 닭살을 다 떨어대는 게 아닌가? 그래, 여기까지는 ‘정말 좋아하나 보다’라고 하며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친구는 우리를 향해 “너네도 서로 좀 먹여주고 그래! 싸운 거 아니지? 크크, 에이, 농담이고. xx 씨 기분 나쁜 거 아니죠? 저희가 사이가 워낙 좋아서요”라며 우리 커플을 디스 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고향 이야기를 해대면서 대놓고 나를 이야기에서 제외하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친구와 친구 커플은 모두 같은 지방 도시 출신이고 나만 서울에서 쭉 살아왔다) 혹자는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xx 씨는 동갑이라 그런지 말이 잘 통하네. 아니 우리 여자친구는 4살이나 어린 <20살>이라서 그런지 가끔 세대차이가 좀 느껴져 하하. 그리고 어린 데다가 이렇게 얼굴이 예뻐서 항상 조마조마하다니까”라며 나이와 외모를 두고 ‘굳이’ 나를 겨냥해 후려치는 게 아닌가? 여기에서 내 인내심은 모두 바닥이 나버렸고, 더 이상 온화하게 자리를 지킬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나는 내 남자친구를 비롯한 그들에게 ‘예민하게 구는 애’로 찍혔고, 입이 풍선보다도 가벼웠던 남자친구의 고향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온통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 사태 이후로 나는 더블데이트의 ‘D’ 자도 입 밖에 꺼내길 거부했고, 남자친구 또한 결국 시간이 지난 후에는 “네가 기분 나빴다던 그때를 곱씹어보니… 솔직히 모든 순간이 다 자세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네가 기분 나쁠 수도 있었겠다”라며 내가 당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닭살을 떨어대며 남을 후려치던 커플은 우리와 만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살벌하게 관계를 정리했고(사실 여기에도 엄청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사생활이므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우리 커플은 그 후로도 꽤나 오래 사귀었다.


이렇게나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끝내려고 하니 어떻게 결론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친구 커플이 결국 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는 ‘꼬시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엄청 후련하지는 않았던, 그때 느꼈던 그 감정과 같달까. 모든 더블데이트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는 유독 매너 없는 사람 때문에 첫 더블데이트 경험이 최악으로 치닫은, 재수 없게 ‘똥 밟은 케이스’ 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말하고 싶은 것은, 더블데이트는 항상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고, 100에 95 이상은 좋지 않은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점이다. 더블데이트의 환상에 사로잡힌 그대들이여, 지금의 권태로운 평화로움을 굳이! 나서서 깨지는 마시길 바란다. 더블데이트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고, 그 함정은 생각해보지도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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