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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12. 2019

너와 나의 학벌 차이,
그리고 집안 차이

모든 건 나의 자격자심 때문이야.


모든 것은 분명 나의 자격지심 때문이야. 그래, 나도 알고 있어. 내 잘못이라는 걸. 난 어제 너에게 헤어지자고 말했지. 그리고 지금은 그걸 후회하고 있어. 그리고 이 후회는 분명 엄청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닐 거야. 넌 나에게 말했지. “난 널 정말 사랑해. 정말 네가 너무 좋다고. 너도 그런 거 아니었어?”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했어. “맞아. 나도 널 사랑해. 나도 정말 네가 좋아. 그런데… 그런데…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간다는 건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해.” 너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어. 그 표정은 옳아. 왜냐하면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참, 웃기다. 너무 웃겨. 너에게 헤어지자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어. 우리가 이렇게 헤어진다는 게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계속 나왔어. 씨발,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열심히 할걸. 아니면, 머리 좋은 엄마 아빠를 만났으면 좋았을걸. 아니, 이런 말을 하면 엄마 아빠가 상처 받으실 거야. 공부를 못 한 것, 그래서 남들이 이름도 모르는 전문대학교 치위생과에 간 것은 사실 전부 내 탓이니까. 나도 그걸 알고 있어. 이런 나에 비해서 너는 공부를 잘했지. 너는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분명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을 거야. 분명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너와 함께 한 4년 동안, 난 네가 성실하고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런 네 모습이 난 좋았어. 넌 서울대에 가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대학에 가지 않았더라도 분명 성공했을 거야. 삶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말해줄까? 네가 서울로 올라가기 몇 달 전, 나에게 고백을 했잖아. 난 우리의 학벌 차이, 네가 서울로 올라가버리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장거리 연애,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덥석 너의 고백을 받아들여버렸어. 나도 네가 좋았으니까. 뭐랄까… 너의 순수해 보이는 모습? 나에게 고백할 때 떨려하는 그 모습이 좋았어. 난 아직도 너에게 고마워.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해 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사귈 동안 거의 네가 지방으로 내려왔잖아? 말하지 않았지만 넌 분명 알고 있었겠지. 내가 서울에 갈 돈이 없다는 것을. 말하자면, 우리 집안이 꽤 가난하다는 걸 넌 알고 있었을 거야. 넌 날 배려했던 거야.


하지만 난 널 배려하지 못했어. 난 점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보다 ‘차이’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했어. 우선 내가 다니는 학교 친구들이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듣게 되었어. <쟤는 공부 잘하는 남자만 꼬신다더라>, <자기가 멍청하니까 남자한테 기대려는 거지>, <겉으로는 안 그러는 척하면서 엄청 영악하다니까>와 같은 이야기들이었어. 난 저런 개소리들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너한테 말하고 싶어. 그래야 쿨해 보이니까.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했어. 저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찔렀어. 왜냐하면 저 말들이 사실이었으니까. 난 네가 나보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심 좋았는지도 몰라. 그런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이런 내가 정말 싫다. 너도 이제 그렇겠지?



너의 친구들과의 만남도 나를 괴롭게 했어. 솔직하게 말할게. 너와 네 친구들은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어. 난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냥 병신처럼 실실 웃기만 했지. 네 친구 커플이 여름방학 때 스페인에 한 달 정도 갈 생각인데, 우리 커플은 어디 갈 예정이냐고 물었었지? 난 그때 정말 깜짝 놀랐어. 다른 나라에 한 달이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 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한 달을 힘겹게 버티고만 있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넌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 같아. 그래서 그냥 이상한 말을 하면서 대충 그 질문을 넘겨버렸지. 내가 열등감을 느낄까 봐 배려했던 거야. 내가 열등감을 느낀 건 맞아. 네 친구들의 “어느 학교 다니세요?”라는 말에 나는 정말 화가 났거든. 왜 그런 걸 물어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저 질문이 당연했던 거야. 난 저 ‘질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에 끼어들 수 없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던 거야.


난 이런 생각을 했어. 네가 왜 나를 만날까? 너도 너희 학교에 있는 여자애를 만나면, 그 애랑 해외여행도 갈 수 있고, 날 만나러 한 달에 몇 번씩 기차 타고 내려올 일도 없을 텐데.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했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난 견딜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정말. 하지만 널 만나면서 나는 계속 끊임없이 나의 ‘진짜 모습’을 확인해야만 했어. 그 모습은 정말 초라하고 보잘것없었지. 그래서 있잖아, 난 그냥 이제 나를 속이면서 살아가려고 해. 그냥 나의 조그마한 세상에 갇혀서 나오지 않으려고 해. 나랑 비슷한 남자를 만나고, 헛된 꿈은 꾸지 않고, 착실히 저금하고, 뭐 그런 삶을 살려고 해. 아마 내가 태어난 이 곳에서 남자를 만나, 이 곳에서 결혼을 하고, 이 곳에서 자식을 낳으며, 이 곳에서 늙어 죽는 삶을 살게 되겠지. 내가 한심하지? 내가 병신 같지?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이게 나인걸. 난 너와 ‘달라’. 정말… 너무 달라.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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