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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05. 2019

나보다 더 잘 나가는 너와의 연애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


때는 바야흐로 내가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던 그때였다. 당시 나는 반년 넘게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가 있었고, 전 남친은 보통의 남학생들이 1학년이나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는 것과는 달리 3년제 전문대를 졸업하고 조금은 늦게 군대에 입대한 상태였다. 전 남친은 자신이 비록 군대에 매여있는 상태였지만, 여자친구인 나 또한 시험공부 때문에 휴학을 하고 집-독서실을 반복하는 루틴을 이어간다고 생각해 조금은 안심했던 것 같다. 어쨌든 전 남친은 군대에서, 나는 독서실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 하며 어서 각자 처한 이 상황적 굴레를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아무 일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이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우리에게도 여느 커플처럼 위기가 찾아왔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군대 간 남자와 기다리는 여자 사이에선 아주 작은 것도 커다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마치 결혼한 커플이 치약 짜는 방식 같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으로도 이혼을 하네, 마네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툼의 원인은 독서실에 있느라 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두는 바람에 남자친구에게서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물론 나 또한 나중에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찍힌 것을 보고 시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생각해 전화를 걸어주었는데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컸다. 


하지만 다음에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의 이런 마음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남자친구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뭐 하길래 전화를 받지 않느냐, 공부하는 게 뭐 대수라고 바쁜 척을 하느냐 등 막말을 퍼부어댔다. 물론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락까지 잘 되지 않으니 초조한 마음에 화를 내는 것은 잘 알겠지만, 어느새 ‘각자 할 일 열심히 하면서 시간 잘 보내자’라고 이야기했던 처음의 약속과는 다르게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그를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는지 힘들기만 했다. 게다가 그는 설상가상 “네가 시험에 떨어졌으면 좋겠어. 난 군대에서 이러고 있는데, 네가 나보다 잘 나가면 내가 너무 못나 보일 것 아냐. 그리고 너 시험 합격해서 돈 잘 벌고 잘 나가면 나 버릴 거지?”라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이때 즈음해서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벌써 5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라서 전 남자친구와의 기억은 선명하지가 않다. 기억나는 것보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아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끔은 이름도 헷갈린다. 하지만 마지막 때 즈음해서 들었던 저 말은 나와 나의 꿈, 나의 미래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나의 뇌리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그의 자격지심은 내가 견딤으로써 혹은 적절한 지지와 응원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분야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크게 미련 없이 아프지 않게 헤어질 수 있었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군대에서 헤어짐을 통보받은 그는 나를 욕하고 미워하고 증오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별 과정에서 나보다 훨씬 더 아팠을 수 있다. 


하지만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자격지심으로 가득한 사람에게도, 그걸 지켜보는 상대방에게도 절대 도움이 되는 연애일 수 없다. 생각해보라, 나의 자아와 꿈, 미래, 아니 현재의 나조차 인정받지 못하는데, 인정 욕구가 본능인 인간이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당연히 수월할 수가 없다. 좋은 관계를 꾸려나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디폴트인 것이다. 물론 디폴트 상태는 옵션 값을 재설정하면 변경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귀찮아서든 방법을 몰라서든) 기본값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는 쉽지 않다.


자격지심으로 뭉치고 뭉친 사람은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과 상황까지 모두 파괴해버린다. 그러니 아직도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강력하게 관계의 재편을 시도해보거나 과감하게 헤어짐을 고하는 것이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길일 것이다. 때로는 나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는 것이 연애를 통해 받는 사랑보다 더 크고 값질 수 있기에.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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