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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29. 2019

남자친구의 은밀한 사생활,
어디까지 존중할까?

야한 동영상 보는 게 죄는 아니니까!


모든 일은 미용실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는 미용실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가는 미용실은 꼭 3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이루어진 ‘멤버십’ 가입을 손님에게 추천합니다. 그 영업 방식이 얼마나 끈질긴지 대부업체처럼 계속 “30만 원을 미리 충전해두시면, 오실 때마다 모든 시술을 20% 할인해드려요.”라고 말해대죠. 저는 그 끈질긴 방식에 질려서 30만 원을 충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카드에 돈을 두둑하게 넣고 미용실에 갔죠.


“곱슬이 정말 심하시네요. 예전에도 한 번 볼륨 매직해드리면서 봤지만, 정말 볼 때마다 놀라워요.” 제 담당 미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녀가 어떤 말을 해댈지 저는 벌써 직감이 왔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두피 상태가 좋지 않아요. 아시겠지만, 두피가 조금 빨간 편이시고… 이렇게 계속 두면 탈모의 위험이 있을 수 있거든요. 멤버십 가입하시면 저희 매장에서 두피 클리닉 시술 50% 할인해드리는데, 한 번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제가 예상했던 그 말을 정확하게 해댔습니다. ‘정말, 미용실의 영업 방식은 너무 뻔하군… 너무 뻔해…’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아, 네. 곱슬이 조금 심하긴 하죠… 저희 어머니 머리카락이 아주 심한 곱슬이거든요. 이 머리,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건데 저도 가끔 정말 어쩜 이렇게 곱슬이 심할까 하는 생각을 하긴 해요. 정말… 우리 어머니 유전자는 정말… 두피도 마찬가지예요. 어머니 두피도 정말 빨갛거든요. 참, 아버지를 닮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필이면 어머니를 닮아서 이런 머리를 가지게 됐지 뭐예요. 정말 운도 없지 참… 아, 그런데 두피 클리닉, 오늘은 안 하고 다음에 올 때 할게요. 괜찮죠?”



그녀는 제 말에 짐짓 당황하면서 “아… 그러셨구나. 아니에요. 요즘 일부러 이렇게 머리 펌 하시는 분도 많으세요. 솔직히 어머니 곱슬이 조금 세련된 곱슬이기는 해요. 파마로도 이렇게 만들기는 정말 어렵거든요. 운이 좋으신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두피 클리닉이나 멤버십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가 버렸죠.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가 머리에 매직 약을 바를 동안 휴대폰을 봤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카톡이 왔더군요. 근데, 뭔가 제가 알 수 없는 말이었어요.


“PPT-038 무조건 다운 받아라. 레알 개 쩐다 진심…”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남자친구에게 “뭔 말이야?”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는 제 카톡을 읽었지만 웬일인지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PPT-038이 뭔지 혹시 아세요?” 저는 제 담당 미용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전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한 번 검색해볼게요.”라고 제게 말했고, 이후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고서는 제게 “음… 뭔가 제가 잘못 검색한 것 같기는 한데… 인터넷에서는 그거 야동이라고 하네요”라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아? 정말요? 아, 그럼 나한테 야동 추천해준 건가? 아니야, 답장 안 한걸 보니까 친구한테 보낼 걸 잘못 보낸 것 같은데… 아, 야동을 보고 있었나 보네? 아… 하하… 참… 정말… 하하…”라고 나는 가수다 박미경식으로 대답해버렸죠.



처음에 제가 느낀 감정은 창피함이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야동을 본다는 것을 저와는 완전히 남인 미용사가 알 게 되었다는 것이 부끄러웠죠.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화가 되어서 매직이 끝나자마자 남자친구에게 한 소리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직 시술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길었고, 그동안 저는 남자친구를 오히려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살며시 안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가 쓴 <꿈의 해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남자의 페니스는 차라리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건 결코 ‘몸의 일부’가 아니다. 남자는 결코 자신의 페니스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남자에게 성욕은 정말 어마어마한 불안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욕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아마 야동의 인기는 이러한 페니스의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야동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돈을 주고 여자를 사는 방법이 그것이겠죠. 하지만 제 남자친구는 그런 방법이 아닌 야동을 보는 것으로 욕구를 푸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혹시 야동을 보는 것이 여자친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남자 – 제 남자친구의 경우 현재 25살입니다. – 의 성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발동하는 반면, 저와의 잠자리 혹은 잠자리 비슷한 행위는 그것을 모두 풀어줄 수 있을 만큼 빈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남자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알아가면 될 일이겠지요.



매직이 끝나고 저는 이제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하러 갑니다. 지금 그는 꽤나 당황한 눈치입니다. 여자친구에게 야동 보는 것을 들켰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겠죠. 하지만 저는 그에게 아주 부드럽고 섹시하며 자상하게 대화를 시도할 생각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만큼 서로의 육체를 채워주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아, 이런 글을 쓰고 보니까 제가 꽤 좋은 여자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겸손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정말 제가 꽤나 좋은 여자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제가 좋은 여자친구가 맞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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