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Jul 22. 2019

다자연애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꽉 막힌 걸까?

다양한 연애 가치관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다자연애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기 전에 이 글을 읽으실 분들께 몇 가지 나의 생각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다.


첫째, 나는 다자연애 지지자가 아니며 현재 5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둘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그들, 다자연애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셋째, 사랑과 그로부터 비롯된 관계들 사이에는 견고한 신뢰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간략하게 소개한 위의 세 가지 측면만 보면, 사실 나는 다자연애에 관한 글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은 얼마 전, 한 SNS 채널에서 다자연애 중인 사람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글의 요지는 자신은 다자연애자이며, 자신의 ‘여자친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또 동의하기 때문에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고백이었다. 동시에 그는 글의 말미에서 자신의 연애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부 사람들을 저격하기도 했다. 평소 다자연애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지만 딱히 관심을 가지거나 잘 아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도 페이스북에서 떠도는 그저 그런 글 정도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글의 주제가 나에게 주는 울림이 컸었던 것 같다. 글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나도록 잊을 만 하면 떠오르곤 했으니까.



그래서 다자연애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자연애를 정확히 말하자면 ‘비독점적 다자연애’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로만 바라보고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지금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과도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다만, 만나고 싶은 상대방에게 ‘나는 다자연애자입니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한 후에 상대방이 그에 따르는 수고로움과 번거로움, 어려움 등을 모두 감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만 비로소 관계가 성립한다.(이게 다자연애자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지켜야 하는 예의인 것이다) 이때 다자연애 관계를 맺으려는 상대방 또한 다자연애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자연애자가 아닌 사람과도 연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다자연애라는 관계에 동의를 한 이상, 서로를 독점하고자 하는 일은 지양해야 하며 나와 관계없는 상대방의 연애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꺼야 한다.


기본적인 개념은 이러한데, 사실 통념상 다자연애가 받아들여지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에 사는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말이다. 20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철학자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2년 간의 계약결혼 관계를 문제없이 있어나갔으며, 계약 결혼 관계 중에도 또 그 이후에도 함께 살면서 ‘우연적인 관계’로부터 오는 상대방의 연인들까지 인정해주는 삶을 평생 함께 해왔다고 한다. 이처럼 다자연애는 연애가 자유로운 요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다자연애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불편한 걸까? 단순히 다자연애가 소수의 문화와 가치관이기 때문에?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그 어떤 것이라서? 대놓고 바람피우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 같아서?


다자연애의 낯설음은 아마도 우리 안에 본능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소유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소유욕’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마지막의 ‘욕(欲)’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인지 왠지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이 ‘욕’이라는 단어, 즉 ‘욕구’는 사람의 본능 안에 잠재한 기본적인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욕구’는 어떻게든 해결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사람이 결핍이나 부족으로부터 오는 정신적, 신체적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랑과 상대방에 대한 욕구가 너무 지나쳐 심한 질투와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나 지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랑에 결부된 어느 정도의 소유욕은 오히려 서로 간에 관계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탱해 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출처 : 네이버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


완결까지 꼬박꼬박 챙겨 본 웹툰 중에 <독신으로 살겠다>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은 6년 넘게 사귀어 온 현재의 여자친구(여자 주인공)도, 우연한 상황에서 마주친 새로운 여자와의 관계도 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과 권태롭고도 위태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현재의 여자친구에게 '다자연애'를 제시한다. 여자친구는 “평범한 우리가 그런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가능하겠어?”라고 반문하지만, 남자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에게 아주 가버릴 것이 두려운 마음에 승낙을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여자 주인공 또한 외로움 때문에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시작하게 되고 남, 여 주인공을 비롯한 각각의 다자연애자들 사이에 미묘한 갈등과 질투, 외로움 등 일반적인 연애에서도 볼 수 있는 감정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웹툰 속에 “다른 이성과 만날 때 죄책감이 생기면 ‘너’를 지우고, 질투가 생기면 ‘나’를 지운다”라는 사무치게 공감할 말이 나온다.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연으로 다가오는 인연들을 막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얽매이고 또 억압하는 관계를 지속하기는 싫다는 이유로 다자연애를 시작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의도적인 노력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된다. 실제로도 결말은 다자연애가 파탄 나고 여자 주인공이 홀로서기를 다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쉽게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실제로 그 일을 겪어본다면 오히려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힘듦을 절실하게 알기에.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다자연애자들에 대해 쉽게 말하거나 무작정 비난해서는 안 된다. 비록 마음으로 온전히, 머리로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기에, 그것을 떠안고라도 다자연애를 선택했을 것이기에…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결혼 할까 말까 한다면 하지 마라

미혼과 기혼 사이 그 무언가

다이아몬드 크기는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