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야 할까?
그에게 매력을 느낀 건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고 삶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유니세프 봉사활동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잇따라 취업에 실패했고 나 스스로가 정말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제가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저라는 인간을 거절했지만, 여전히 제가 이 세상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유니세프 봉사활동단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대기업들과 달리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니세프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아닙니까? 저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취업 실패로 얻게 된 열등감을 덮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는 대기업에서 아무 의미 없이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과는 달리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네, 저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줘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서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웃는 얼굴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한 젊은 여성을 연기하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동참해달라고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네, 저는 길거리에서 그렇게 구걸을 했습니다. 한 달에 만 원이라도 후원을 해달라고 말이죠. 이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윽고 저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개 짓거리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 믿음이 무너지면 저는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이렇게 의미 없이 나를 속여가는 나날들 속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제 다음 기수로 들어온 그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는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제게 사랑스러운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LG 케미컬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몽골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것인지 묻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오지로 날아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삶의 비밀을 알고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그가 채워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확신에 차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 제가 가지지 못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에게 조금은 기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경을 한 번 읽어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탐탁지는 않았지만 그를 믿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 대략은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중학교 이후로 교회에 나간 적은 없습니다. 개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를 믿었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고 하는 그의 말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성경은 너무 어렵고 지루해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성경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제게 명확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한다고, 정말 그렇게 살기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제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녹아내렸고 하나님과 그에게 제 삶을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와 사귀게 되면서 성경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한 달 전쯤, 그는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함께 가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좋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모두들 제게 친절했고, 저는 성경을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일주일 전, 공부를 위해 유튜브를 찾아보던 중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소위 ‘이단’이라고 불리는 사이비 교단의 설교였는데 놀랍게도 남자친구가 성경을 설명하는 것과 백 퍼센트 똑같이 성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그 사이비 교단이 올린 영상을 모조리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사이비 교단에 다니고 있는 것이 맞고, 그것도 매우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를 그곳에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는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었는데, 정말 그랬는데 사이비라뇨? 이번에도 저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요? 의미를 찾아 봉사활동도 하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하, 도대체 언제까지 저는 실패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저는 솔직히 그냥 사이비를 믿어버리고 싶습니다. 계속 실패하면서 살 바에야 그냥 남자친구 옆에서 이 교회와 교리를 열심히 섬기면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종교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요? 저는 제 자신을 속이고 싶습니다. 간절히요.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