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케 8번 받은 여자 vs 부케 던져본 여자 #01
봄날은 간다
꽃바람 불던 시절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35살 즈음이다. 삽 십여 년 살며, 사랑의 열병 한 번 앓아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랑이란 이성이 지배하지 못하는 감정이라 치부해버렸다. 그런 논리가 정립 되자, 더 이상 누군가 너무 보고 싶어 이유 없는 기차표를 끊지도, 누군가로 인한 이유 없는 애 닳음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비단 사랑뿐이었을까. 많은 이들이 음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배설하는 일명, ‘상장폐지녀’ 같은 비하 말에 화는커녕, 분노를 삼키지도 않았다. 당연히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부정했다. 나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감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욱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분노로. 분노는 우울을 거쳐, 마침내 수긍의 단계에 이르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사이 나는 사회와의 타협에 서서히 순응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이목을 특별히 의식하며 살지도 않았다. 그렇게 37살이 되었고, 나이만큼 쌓인 부케만 8번이 되었다.
달다.. 소주
결혼이란 키워드 하나만 놓고도 신물 나게 할 말 많은 나이. 부케를 한 번 던진 친구들이 두 번째 던져 갈 때쯤, 인생보다 소주가 달다를 느꼈다. 정말이었다. 지독하리 쓴 소주를 마시지 못해, 늘상 맥주를 마셨는데 하루는 정말 소주가 달았다.
“이상하게 소주가 다네요.”
라고 말하자, 그만큼 인생이 써진 거라고 말하던 상사의 말에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뿜어져 나왔다. 공감의 탄식이었다. 소주가 달아 진 내 인생의 깊이만큼 이나, 이 지구는 너무도 넓고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한 주제를 놓고도 미혼과 기혼의 시각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비슷한 나잇대 결혼한 친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애를 낳고, 어느새 키즈카페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 미혼인 나는 오고가는 육아얘기에 그저 멀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느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미혼과 기혼 사이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음을. 같은 물건을 보고도 누군가는 ‘나’를, 누군가는 ‘가족’을 생각하고 있음을. 하지만 우리는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을. 그렇게 부케 8번 받은 여자와 부케 던져 본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