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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Oct 23. 2019

결혼은 따뜻한 쌀밥이야.
떡볶이가 아니야

“결혼하면 뭐가 달라져?” 묻는 친구들에게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에 대한 본질이 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혼 전, 직후까지만 해도 ‘남친이 남편이 되고, 그의 가족들이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것’ 정도로 단순히 생각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살아보고 겪어 보며 알게 됐다. 결혼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자 기존 가족과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무얼 해도 ‘혼자'로 느껴졌다. 어떤 길을 가도 혼자 가는 게 당연했다. 삶의 무게는 온전히 내 어깨에만 내려앉았다. 그런 삶이 때론 고되게 느껴졌지만, 다른 이에게 의지하는 것이 점점 어색해졌다. 모든 것이 내 의지로 결정되고, 간섭받지 않는 삶은 얼마나 재미있던 지. 어떨 땐 인생이 모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산 게 10년이 넘는다. 



어쩌다 보니(?) 결혼을 했다. 남들이 하는 결혼이라는 걸 해보고 싶기도 했다. 결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이 일어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결혼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줄 알았지만,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강력한 그 이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더라.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나는 엄마, 아빠의 딸이었고 우리는 가족이었지만 지금처럼 마음가짐이 ‘가족적'인 적이 없었다. 참 이상한 말이긴 한데,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강력하게 들고 어떤 든든함마저 느껴진다. 흔히 안정감이라고 표현하거나 소속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족 해체 시대에 웬 가족 소속감을 운운하나 싶은데, 그게 맞다. 결혼이라는 게 사실 엄청나게 구닥다리 제도이지 않은가. 그 구닥다리를 기꺼이 내가 선택했다니 참 놀랍다. 이런 안정감 때문에 결혼을 선택했다는 사람도 많다. 죽어도 이해 안 되더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거 보니 나도 유부가 다 된 모양이다.


참 재미있는 건, 10년이 넘게 가족끼리 자주 교류하지 못한 걸 극복하려는 듯 자꾸 만날 일이 생기고 상의할 일이 생겨 통화 목록에 부모님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독립적인 삶을 살던 나였다. 부모님도 일 년에 손에 꼽을 만큼 찾아뵀고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나는 완전히 벗어났었다고 생각했다. 아예 다른 삶을 살게 됐고, 가족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떨어져 있던 마음이 결혼으로 인해 놀랍도록 다시 붙더라. 마치 자석의 자성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하지만, 앞서 설명한 작용들 때문에 결혼 전 자아를 결혼 후에도 계속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족 간의 유대와 신뢰가 강화될수록 자아는 위축되고 만다. 그동안 온 힘을 다해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나'를 찾아 떠난 여정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결혼 후에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밥’에서도 나타난다. 20살부터 독립해 혼자 사는 동안 나는 밥을 큰 의미로 생각한 적이 없다. 배고프면 먹고,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밥 대신 다른 것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일이 더 많았다. 1년에 쌀 5kg도 소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결혼 후, 엄마는 유난히 나에게 밥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가족이면 두런두런 둘러앉아 밥을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서방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따신 밥 해주라고 강조한다. 시어머니도 나를 만날 때마다 “요즘 밥은 해 먹니?”라고 물어본다. 그놈의 밥이 뭐라고. 그 죽일 놈의 밥이 곧 가족이구나 싶다. 밥, 반찬 뚝딱해서 남편하고 둘러앉아 먹다 보니 엄마 말대로 이제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 쌀 10kg을 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쑥쑥 줄어든다. 우리나라 쌀 소비량이 추락하는 이유가 다들 결혼을 안 해서 그렇구나라는 머쓱한 생각까지 해본다.


결혼은 따순 밥이다. 밖에서 돌아오면 나를 위해 기다리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은 보기만 해도 훈훈해진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며 안정감을 느낀다. 이전처럼 밥을 뿌리치고 매일 떡볶이나 탕수육을 시켜먹지 않는다. 비록 메뉴 선택권은 줄었지만, 따뜻한 밥을 가족과 매일 먹을 수 있으니 만족한다. 결혼은 이런 것이다. 자유가 줄어드는 대신 가족에 대한 유대감은 커지는 것.


늘 강조하지만 내 글은 결혼 장려 글은 아니다. 따뜻한 쌀밥과 자극적인 떡볶이 중 무엇을 택할지는 순전히 본인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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