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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16. 2019

당신이 내 몸을 만졌던
그때를 기억해요

성욕의 노예


돈 때문에 일하는 것보다 자살하는 게 낫다. 나는 아주 확실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이제는 그 어떤 철학적 성찰로도 이 결론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돈 말고 일을 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자아실현, 자기 계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꾼다 등의 말이 있다는 걸 나도 알고는 있다. 몇몇 직장 동료들이 <나는 직장에서 행복을 찾는다>라는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있는 걸 봤으니까.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단 1%도 발견할 수 없다. 내가 일하는 것은 오로지 월급 때문이며, 그렇기에 나는 노예다. 행복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렇다고 내 직장이 나쁜 곳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 난 곳이다. 나는 공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매년 입사 경쟁률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를 말하자면 원만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 한 번도 혼자 점심을 먹은 적은 없으니까. 구내식당에서 먹든, 밖에 나가서 사 먹든 나는 항상 직장 동료들과 함께였다. 그들에게 내 연기가 통했음에 틀림없다. 나는 과장님, 센터장님께 한없이 예쁘고 수줍은 얼굴을 보여주었으며 그것 때문에 광대가 부서질 뻔했다. 억지웃음은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지만 덕분에 직장 내에서의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야망을 보여주지 않았고 내 의견을 개진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시키는 일만 했다. 공기업이 원하는 최고의 인재상이 바로 나다.


지금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분명 남자 친구 때문이다. 그는 착하고, 내게 웃음을 준다. 가끔 이거면 삶이 충분하다고 느낀다.


“넌 왜 일 해? 교직원 생활이 좋아? 원래 그걸 하고 싶었어?” 나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 하고 싶었냐고? 누가 교직원을 원래부터 하고 싶어 하겠어? 나는 원래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재능이 없었지. 그래서 교직원을 하게 된 거야. 60군데 정도 지원을 했는데 거의 떨어지고 이 자리에 오게 되었지. 그래도 괜찮아.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니까. 내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보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


나는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고등 교육을 받은 현대인으로서 나는 내 이기심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살아왔다. ‘나의 권리’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으며 가족이고 친구고 나발이고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으며, 길가에서 죽어가는 거지새끼를 봐도 천 원 한 장 주지 않고 못 본 척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나와 다른 사람이었고 그것이 그와 사귀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최근 그와 문제가 생겼는데 그가 나와 섹스를 너무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서로의 알몸을 다 보았고 만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에게 삽입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나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섭기도 하고 뭔가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은 그와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 


이건 사랑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그에게 차분하게 설명했고 그도 나를 이해했다. 하지만 그의 성기는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불뚝 불뚝 솟아났다. 남자 친구는 그 물건을 어찌하지 못해 정말 죽으려고 했다. 나는 흔들어 주고 입으로도 하면서 사정을 도와주었지만 그걸로는 분명 성에 차지 않은 것 같았다. 성욕은 정말 대단한 거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성욕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고자가 되는 것 밖에 방법이 없겠지. 옛날에 궁궐에 살던 내시들의 성기를 자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고환을 가지고 있었다면 궁녀들과 몰래 사귀면서 섹스를 했을 것이다. 콘돔이 없던 시기니까 궁녀들은 임신을 했을 것이고, 그걸 들키는 게 싫어서 아이를 낳고 바로 길바닥에 버리거나 이상한 약을 먹어서 유산시켰겠지. 어찌 되었든 24시간 내내 왕과 왕비를 보필해야 하는 그들에게 성욕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됐었다. 그걸 ‘조절’ 할 수 없으니까.


“네가 너무 예뻐서 그래. 얘가 말을 잘 안 들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정말 어쩔 수가 없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 이게.”


나는 그 말을 듣자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역질이 났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토했다. 토하면서 동시에 눈물이 나고 콧물도 났다.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든 물이 다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남자 친구는 당황해서 얼른 나를 뒤따라와 등을 두드려줬다. 나는 입을 헹구고 그의 품에서 울었다. 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미안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고 자자,라고 말했다. 원래 옷을 벗고 자는 남자 친구는 위아래를 다 걸치고 내 옆에 누웠다. 성기를 보여줘서 내가 토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건 아니다. 나는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아마도 9살 혹은 10살이었을 것이다. 그는 11살 혹은 12살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무슨 놀이를 하고 있다. 뭘 하고 있는 걸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뭔가 몸을 다투는 놀이를 하고 있다. 그가 “초능력!”이라고 외치고 갑자기 옷을 벗는다. 나는 웃는다. 그래, 나는 아마도 웃었던 것 같다. 웃겨서 웃었던가? 아니면 부끄러워서? 모르겠다.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초능력!”이라고 외치고 옷을 벗는다. 아닌가? 그가 나에게 “초능력!”이라고 외쳤고 그러면서 내 옷을 벗겼나? 모르겠다. 상세한 것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둘 다 옷을 벗었다. 우리는 여전히 몸을 다툰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나를 눕히고 내 몸 위로 올라온다.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살과 살이 맞닿는 기분이 나를 오묘하게 만든다. 이게 기분이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그는 갑자기 허리를 흔들면서 “아, 아!” 하는 소리를 낸다. 나는 왜 그러냐고, 어디 아프냐고 물어본다. 그는 아니라며 원래 이런 거라고 말한다. 그는 내게 삽입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 위에서 몸을 흔들었을 뿐이다. 그의 성기가 내 몸에 닿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을 잊어버리려 노력했다. 나이가 들고 성욕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그와 있었던 일들이 뭔가 거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했던 행동들을 성(性)적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그냥 어린아이들의 놀이라고 봐야 할까? 나는 후자로 보고 싶지만 그가 내 몸 위에서 허리를 흔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분명 섹스가 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몸과 몸이 닿았을 때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우리가 했던 행동들이 성(性)적인 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린 나이였기에, 그것이 성적인 것이며 남녀가 옷을 벗고 몸을 맞대는 것이 정상적 상황이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긴 했다. 하지만 섹스를 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우리는 필시 섹스를 했을 것이다.



나는 겁에 질린다. 성욕은 날뛰는 말과 같아서 인간이 쉽사리 길들일 수가 없다. 나는 다시는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왜 섹스를 하고 싶으며, 어떤 쾌감을 느끼길 원하며, 어떤 방식으로 섹스를 하고 싶은지 모조리 다 알게 된 상태로 섹스를 하고 싶다. 성욕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으며 성욕을 완벽하게 다스리고 싶다. 하지만 이게 가능할까? 늙은이들은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성욕이 사라져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늙어야만 성욕을 조절할 수 있을까? 가슴이 처지고, 엉덩이도 처지고, 또 신체의 모든 부분이 다 처져야만 성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노예가 되느니 자살하는 것이 낫다. 나는 아주 확실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이제는 그 어떤 철학적 성찰도 이 결론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돈이 있고, 성욕이 있고, 식욕이 있고, 세상 모든 것들이 인간을 노예로 만들려 하고 있다. 나는 절대로 남자 친구와 섹스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참다 참다 나를 떠나 섹스를 할 수 있는 여자와 사귀게 되겠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섹스를 하는 게 나은 선택일까? 어린 시절 기억이 내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일까?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일기처럼 이 글을 써본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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