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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23. 2019

첫 경험의 환상을 깨부수자

처음에 목맬 필요는 ‘절대’ 없다.


누구나 첫 경험에 대한 환상은 있다. 특히 여자라면 하나 이상의 판타지스러운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대로, 그 상상대로 모두 실현되는 경우는 감히 ‘절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다지도 ‘처음’에 목을 매게 되었을까? 도대체 ‘처음’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인지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할 정도다. 첫사랑도, 첫 연애도, 첫 경험도, 첫 결혼까지도(요즘 평생 결혼은 한 번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놈의 처음은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이라는 평범한 사전적 정의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얼마 전 우연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라는 영드를 접했다. 2, 3개의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유치한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결말로 이어질수록 연애, 우정 이야기보다는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을 그려내는 스토리 라인이 참 좋았다.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여자들이 첫 경험에 대한 환상을 늘어놓는 장면이 유독 흥미로웠다. 


출처 :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시즌 3 공식 포스터


세 명의 절친들은 모두 첫 경험이 없는 10대다. 각자의 남자 친구와 첫 경험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있다. 여느 여자애들이 그렇듯, 친구들과는 비밀이 없다. 그래서 “오늘 입은 옷 어때?”라고 가볍게 물어보는 것처럼 남자 친구와의 첫 경험에 대한 판타지를 늘어놓는다. 하얀 침대보가 깔린 폭신한 침대 위에 장미 꽃잎이 흐드러지게 뿌려져 있고, 조명은 은은하며 바로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달콤한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다가와 로맨틱한 키스와 함께 아름다운 첫 경험을 선사해줄 것이다. 물론 ‘처음’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첫 경험에 대한 설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각자의 환상을 나눈 그녀들은 d-day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게 웬걸? A 앞에는 은은한 조명도 새빨간 장미 꽃잎도 달콤한 와인도 없다.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거실 한가운데 놓인 소파 위에서 티비를 보다가 해버리고 말았다. B는 누군가(설령 그게 사랑하는 남자 친구라 하더라도 말이다)의 눈 앞에서 적나라한 속살을 내비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두려움이 몰려와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듯 도망치고 말았다. 그리고는 남자 친구와 잠시 헤어진 사이,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남사친과 홧김에 첫 경험을 해버린다. “누구나 나의 첫 경험은 특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영화 속 이야기다. 영화는 그저 이야기일 뿐 현실과 다르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이것이 바로 첫 경험의 단꿈에 부풀어 있던 여자들의 리얼한 스토리다. 그리고 드라마 주인공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첫 경험 나이 때가 다양해 이미 경험한 친구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이미 경험한 친구들은 아직 경험하지 못해 환상을 품고 있는 친구들에게 항상 “별 거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말해주는 자신의 첫 경험 전 환상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친구들의 환상과 거의 90% 이상 흡사하다. 즉, (유관 공식 기관 비인증, 비공식 푸들 통계에 따르면) 10명 중 9명 이상이 본인의 첫 경험 환상과 실제 경험이 상당히 동떨어진 방식으로 매치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이 바로 잔혹한 현실이다.


무엇에 관해서건 우리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가슴 뛰고 설렐 수도 있다. 하지만 가급적 기대감이 과한 환상으로까지 번져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말자. 현실 때문에 기대감이 무너지는 순간, 생각보다 별 것 없음에서 오는 초라함이 우리를 맞이하러 버선발로 뛰어나올 테니까. 또 혹시라도 과도한 기대를 했다가 현실과 환상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좌절감이 밀려온다고 해도 심각하지 말자. 처음은 그저 처음일 뿐, 더 많은 좋은 경험들이 죽을 때까지 우리를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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