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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30. 2019

여자가 너무 두렵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여자를 만날 수 없는 나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1살 청년 김다아라고 합니다.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고 월급은 세전 210만 원입니다. 차는 없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어 자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암에 걸린 가족은 없고, 치매에 걸린 가족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자 친구도 없습니다. 여자가 두려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은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 마치 전생처럼 느껴집니다. 그녀를 사랑했는지, 도대체 어떻게 그녀와 사귀게 되었는지, 심지어는 그녀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일까요? 초등학교 6학년,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이야기니까요. 어쩌면 제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네, 모태신앙인데요,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닙니다. 그냥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예배에 나가는 것뿐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대 후반을 지나고부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피곤하고, 기존에 있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데면데면 해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제 신문을 읽었는데 돈 때문에 사람 만나는 걸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꼭 돈 문제만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이제는 너무 피곤합니다. 



교회 사람들은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분은 아시겠지만, 교회에서는 다들 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그나마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죠. 저는 31살이지만 결혼을 못해 아직도 청년부에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그렇듯 제가 다니는 교회도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7:3 정도라고 봐야 할까요? 그래서 교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부부가 정말 많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냐고요? 교회에서 여자를 만나려고?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자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 두려워해 아직까지 그 어떤 사람과도 썸을 타고 있지 못합니다. 여자에 관해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건 제가 여자의 감정을 너무나도 잘 읽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들의 거짓말이 바로바로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그 사건’ 때문입니다. 아, 참고로 저를 여혐 종자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건 멍청한 사고입니다. 여자를 ‘싫어’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교회 성가대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성가대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저 같은 일반 신도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예배를 준비하죠. 그녀는 거의 접신한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거의 트와이스 다현이 ‘독수리 날개 치듯’이라는 춤을 추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필시 미친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모태신앙이기에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는 접신한 듯 춤을 추는 그녀를 보면서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 앞에서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자의식이 강하지 않은 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유행하는 말 중에 ‘걸 크러쉬’니 뭐니 하는 말이 있는데, 싸가지 없는 것과 당찬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가 늘어났습니다. 제멋대로 싸가지 없고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것을 주체적이라고 생각하죠. 세상은 한층 더 살기 피곤한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그런 사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그런 춤을 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그녀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시며, 그분이 이끄는 대로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제 심장은 폭주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봉사반에 들어갔습니다. 그녀가 교회 봉사반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모범적인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열심히 봉사에 임했고, 틈틈이 기도했으며, 특히 밥 먹기 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차츰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신앙을 나누었으며, 같이 밥을 먹었고, 손도 스쳤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제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것입니다. 그녀를 보는 제 눈빛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관계를 어떻게 보실까?” 


그녀는 제게 이렇게 물었고 저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우리 관계를 이렇게 깊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이제 하나님이 허락만 해주신다면 나와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인간을 만들고 이런 말을 하셨어. <보기에 좋더라.>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보면 딱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실 걸?” 


제 말에 그녀는 깔깔 웃더니 수줍은 듯 “맞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그렇게 모텔에 갔습니다. 저도 집에 들어가기 싫었고, 그녀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습니다. 거의 20년 만의 섹스였고, 사실 첫 섹스였습니다. 섹스를 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결혼 후에만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말 분위기가 섹스를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다들 섹스해보셨죠? 제 말이 무슨 말인지 분명 아실 겁니다. 심장이 정말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는 씻고 온다고 말하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유튜브에 ‘섹스 잘하는 방법’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너무 길어서 끝까지 못 보고 나왔고 어떻게 하다 보니 그냥 섹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를 생략하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제가 엄청 오랫동안 했다는 것입니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너무 긴장을 해서 아예 사정을 못했습니다. 그녀는 2시간이 지나자 힘들어했고, 저 또한 너무 힘들어 섹스를 멈추고 우리는 잠에 들었습니다.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쉽게 깨졌습니다. 그녀가 이별을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2개월 만이었습니다. 무슨 개 같은 경우일까요? 그녀는 저보다 한 살 어린 30살입니다. 그녀는 결혼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고 어서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교회에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비밀이 없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니까요. 



결론은 간단합니다. 저는 결혼을 하기에는 돈이 너무 없습니다.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직장도 변변치 않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그녀는 애초에 왜 저와 만났을까요? 저는 그녀에게 깜빡 속아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저에게는 그러한 고민을 단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로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는 결혼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아이를 가지려면 모아놓은 돈이 어쩌고 저쩌고 했다는 것이 참으로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저는 김현중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알겠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서 저는 여자 공포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 밖 여자들은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도저히 맞춰줄 수 없는 수준의 행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안에 있는 여자들을 찾았습니다. 그녀들은 세속적 욕망과는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돈보다는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하죠. 저는 돈을 많이 벌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여자가 제게 더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생각마저도 의심이 듭니다. 아! 여자들은 어찌나 거짓말에 능한지요. 앞에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랑한다 말하면서 뒤에서는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니요! 아! 저는 너무나도 괴롭고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사랑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거짓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할까요? 생각해보니 하나님은 결혼을 하지 않으셨고, 예수도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 기독교는 사랑을 모릅니다. 기독교는 그 복잡다단한 인간 감정을 모릅니다. 아! 죽고 싶습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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