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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05. 2020

가족인데 왜 집 열쇠를 못 주니?

결혼은 또 하나의 독립하는 과정이다.

“한 가족인데 서운하다야.” 


필자의 친구가 친정어머니에게 들은 한마디. 결혼 준비만 하더라도 벅찬데,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 때문에 힘들어야 하다니, 친구는 결혼한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친구가 필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렇다. 부모님이 신혼집 비밀번호를 알고 싶어 하신다는 것. 듣기만 해도 등줄기의 땀이 식는 상황이다. 이번 편은 가족, 그리고 독립에 대한 이야기다.  


출처 : 영화 <장수상회> 스틸 컷


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요?  


친구 A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 그런 A가 결혼을 한다고 부모님께 선언했다.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만나온 오래된 남자친구와 10년 연애를 청산하고,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것. 평생 연애만 할 줄 알고 지냈던 딸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A의 부모님은 네가 드디어 부모의 여한을 풀어준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다만 결혼을 준비하며 A는 난감한 상황을 여러 번 마주했다. 서로 다른 종교에 따른 혼인 방식의 차이, 혼수 준비 등과 같은 크고 작은 일이 계속해서 결혼 준비를 방해했다. 그러나 10년 장수 커플은 현명했다. ‘이런 건 네가, 저런 건 내가’ 하며 중요도에 따라 의사결정권을 달리했다. 그러던 A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마주했다. 바로 그의 어머니께서 신혼집의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신 것. 


이 말은 남자친구와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나왔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식사 자리 내내 표정이 어둡던 남자친구는 속이 좋지 않다며 디저트도 먹지 않고 떠났단다. 그날 밤 남자친구는 A에게 짧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께서 제안하신 거, 네가 해결 못 하면 난 결혼 못 해.’ 


아니 도대체, 왜 엄마는 집에 드나들고 싶어 하는 거야? 


출처 : 영화 <더 테이블> 스틸 컷


가족인데, 숨길 게 뭐가 있니? 


필자의 생각도 친구 A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A를 대신해 육아 때문에 양쪽 집안을 오가는 또 다른 친구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육아 때문에 가는 거지. 사위가 먼저 와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주는 거고, 일체 살림에 손 안 댄다. 결혼했으면 남이고 아예 다른 집인데 거길 왜 내가 함부로 가니?” 


“반찬이라도 챙겨서 갖다 주실 수는 있지 않나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긴 하거든요.”  


“자식 내외가 독립하고 집이 생긴 만큼 엄연히 그 집은 주인이 다른 거야. 그리고 꼭 반찬을 사람 없을 때 가져가야 해? 내가 손님이지, 청소 도우미니? 지금도 손주 픽업 때문에 가는 거지. 그리고 사위 보기도 부끄러워!” 


그래 독립. 필자의 머릿속이 그제야 정리됐다. 


출처 : 영화 <애자> 스틸 컷


한 가정을 꾸렸다는 걸 서로 존중해줘야 


A 커플의 문제는 친구가 잠시 가출을 하면서 해결되었다. A의 어머니는 자식 내외 밥 한 번이라도 챙겨주려고 가는 건데, 끝끝내 엄마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중간에서 아버지가 중재해주지 않았으면 더 큰 일 날 뻔했다고 A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A 또한 부모님이 집을 들락거리는 게 정말 불편하다고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한들,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도 있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찾아오신다고? 게다가 자신의 부모님이 찾아오신다는 건 시댁 어른까지 오실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분들은 여전히 견고한 벽처럼 느껴지는 어려운 분들인데, 집에 오셨다가 집안 꼴이 이게 뭐냐는 둥, 밥은 챙겨 먹고 다니냐는 둥 잔소리가 오갈 것이 뻔하다고 했다.  


열쇠를 넘기는 문제보다 더 큰 것은 바로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거다. 결혼한 이후에는 결혼 전 살던 본가의 집안 열쇠를 반납해 사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만큼 한 가정을 꾸린 ‘성인’이자 손님이 됐다는 걸 우리는 모두 이해해야 한다.  


물론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한다. 평생 알고 지낼 ‘가족’인데, 집안을 오간다는 게 대수겠냐는 것. 이렇게 따져보면 어떨까? 그 누구라도 노크 없이 내 공간에 허락 없이 들어오면 불쾌하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이실 거다. 문 닫힌 방에 들어오면 노크도 모르냐며 짜증 내시지 않았나. 


집은 방의 연장이다. 그것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낯선 이가 사는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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