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Apr 06. 2020

님아, 그 허상에 속지 마오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과 양육에 관한 SNS 속 허상


유일하게 계정을 가지고 있는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병원이나 은행에서 가끔 생기는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 긴 글 없이 사진과 짧은 영상들의 나열일 뿐인 정사각형의 네모진 공간은 꽤나 유용하다. 그렇다고 스스로 인스타그램에 남들 보기 낯부끄러울 만한 셀카나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그런 게시글을 올리지는 않는다. 지인들과의 소통과 기록용으로 간혹 한두 장의 사진을 올릴 뿐, 이렇다 할 활동도 잘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대양 위를 부유하는 스티로폼 쪼가리처럼 SNS를 떠돌다 관심 있을 만한 피드와 계정을 추천하는 페이지를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유저의 검색 기록을 모아서 평소 관심 있어하는 주제나 대상과 관련된 것을 추천해준다는 것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때 이른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관한 게시글들이 추천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난 그런 쪽과 관련된 해시태그나 검색어를 찾아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가입하면서 나이를 기재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이를 적어 제출했다면 아마 내 나이 때로 말미암아 ‘한국의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자는 이런 게시글에 관심이 많겠지’라는 인공지능의 단순하면서도 제 딴에는 명쾌한 논리로 내게 쉽사리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모성애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의 셀카를 추천한 것이겠지. 하지만, 인공지능의 추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주제 추천 측면에서는 추론이 어느 정도 맞았다고 할 수 있으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관해 ‘좋아해서 관심을 가지고 볼 것 같다’는 이유로 추천을 했다는 점에서는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집 노 여사님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참 좋아져서, 엄마 나이 때의 동년배들이 우리 또래를 키울 때는 알기 어려웠던 잡학 다식한 육아 지식들을 이제는 스마트폰 몇 번 두드리면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육아는 (아이) 템빨’이라고 외치는 사촌의 말처럼, 안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육아를 조금이라도 쉽게 견뎌보고자 서로 좋다는 걸 재빠르게 공유하는 것은 이제 엄마들의 일상이자 아이만큼이나 최우선 순위에 있는 일이 되었다.  


어디 출산과 육아만 그러한가? 결혼 준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초록창에 검색하기보다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검색함으로써 동영상과 깔끔한 이미지 위주의 사진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블로그 시절에는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딱딱한 설명체의 글과 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화질 낮고 어딜 찍었는지 초점조차 잘 잡히지 않은 사진을 확대해가며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힘들었다면, 이제는 사진 뒤에 숨겨진 사각지대까지 모두 낱낱이 파헤쳐 좋고 나쁨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동영상과 각종 리뷰어들의 솔직 담백 리뷰로 웨딩드레스를 실제로 입어보지 않아도, 식장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대략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알 수 있어 의사결정에 쓰이는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SNS 속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이면에 가리어진 허상들이 허여 멀 건한 베일을 쓰고 보일 듯 말 듯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불편한 감정이 훅 밀려온다. 게시글을 적극적으로 업로드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본인의 일상을 기록하고 추억하고 자랑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다. 하지만, 좋은 면만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SNS의 특성상 보이는 것을 중시하기에 불필요한 소장을 조장한다. 한편으론 SNS가 아니었다면 비교하지 않고 다투지 않았을 커플, 부부 그리고 부모들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카메라 뒤의 허상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쁜 사진 한 장 건져서 업로드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아이와 수십 번 실랑이했을 부모, 신랑 혹은 신부에게 활짝 웃어보라며 광대뼈까지 떨리게 했을 시간들이 사진과 영상 이면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미지만을 눈 앞에 둔 우린 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하고, ‘결혼하게 되면 우리도 남들처럼 티파니에서 다이아 반지 정도는 해야 될 테고, 아이 낳으면 차가 한 대 있는 게 편하다던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저렴한 외제차 정도는 뽑아야 되겠고… 아이들 사진도 많이 업로드하던데, 우리 애 옷도 예쁘게 입히고 나중에 보여주려면 기록해야 하니까 만삭 사진부터 모유 수유, 잘 먹고 응가 잘 싼 것까지 다 찍어서 업로드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비교와 시기, 질투하고 또 과시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SNS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세태가 이러하니 스몰 웨딩은 진짜배기 스몰이 아니게 되었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인스타그램 속 친구 피드를 보고 비교하며 ‘이럴 거면 나도 조금 더 얹어서 좀 더 비싼 거!’를 외치면서 결혼 준비 비용이 어마무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SNS에서 남들이 쉽게 애 낳아 쉽게 육아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 없이 임신, 출산하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백일의 기적을 기다리는 나요, 내가 원하고 바란 것은 이런 게 아닌데 허상에 속았구나 싶어도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현명한 독자들이여, 땅 치고 후회하기 전에, 남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기 전에, 님아 SNS 속 그 허상에 속지 마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현실과 진실은 당신 바로 옆에 있으니.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결혼식날 이동, 걱정되시죠?

유독 나의 연애만 힘든 이유

“다 같이 멸망하자!?” 결혼과 출산이 사라진 시대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한 후에도 질투심을 잃지 말아 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