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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30. 2020

결혼한 후에도 질투심을
잃지 말아 줘

나 때문에 네가 하루 종일 불안해했으면 좋겠어


괴테는 74살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천재들이 말년에 미쳐버린다는 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에 놀랄 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천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늙으면 미친다. 할머니는 절대로 천재가 아니었지만 82세가 되면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요양원으로 보내졌고, 거기에선 행복해 보였다. 그녀가 ‘그곳’에서 행복해하니 우리 가족도 행복하다.


하지만 괴테는 좀 다르게 미쳤다. 그는 74살에 19살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난 이걸 원조교제를 원하는 노망난 할아버지의 욕망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그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절절한 연애편지들을 쓴 남자가 ‘오로지’ 젊은 육체에만 눈이 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괴테가 ‘정말로’ 19살 소녀 울리케를 사랑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울리케가 너무 부러워졌다. 괴테는 울리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을 인지한 후 미쳐버린다. 그녀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이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천재이며, 불멸의 작품들을 남긴 남자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당신이 날 사랑해준다면, 내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낄 것이오.” 


도대체 울리케는 어떤 여자였을까? 그녀가 이런 절절한 사랑 고백을 받았다는 사실에 질투가 난다. 나도 이런 여자가 되고 싶다. 74살이 되어도 남편이 나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불안해하며, 그 감정을 추스르느라 너무 바빠서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못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정말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 난 지금도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가끔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상상을 해본다. 피가 거꾸로 솟아서 방에 있는 인형에 어퍼컷을 3대 날리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만약 그가 ‘한 사람’을 사랑해서 나를 떠난다면, 난 분명 산산조각 나 버릴 것이다. 나를 떠나야 한다면, 꼭 그래야 한다면 그가 여러 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편이 났다. 그럼 ‘그녀들’ 역시 여러 명의 여자들 중 한 명일 뿐이니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할 한 명의 여자를 찾아야 한다면, 그건 반드시 나 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예 사랑을 찾지 못하는 편이 낫다. 


난 이런 내 마음을 숨기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나는 질척거리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그를 내 옆에 붙들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남자들은 사랑한다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듣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그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카페에서 가만히 그의 사타구니 위에 발을 올려놓아 본다. 내 발이, 그 조그마한 움직임이 그를 발기시킬 수 있다면 그는 아직 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 발의 움직임에 페니스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은 떠났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그는 발기했고, 난 기분이 좋아졌다. 


난 책을 읽을 때 단 한 번도 밑줄을 긋거나 형광펜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더럽힌 적이 없다. 나는 책 페이지를 접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를 만난 이후부터 나는 마음에 드는 문장 – 정확히는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 – 이 나오면 사정없이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버린다. 잊지 않고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후부터 나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매일 새로운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경제, 경영 서적 그리고 기술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내 말에 놀란 눈을 떠보이거나 관심 있어하면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게 그가 내 매력을 끝도 없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원피스, 향수, 머리 스타일에도 항상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는 내가 이런 노력을 하는 걸 전혀 모를 것이다. 내가 어느 날 단발로 나타나도 “머리 잘랐네.”라는 말만 할 뿐, 내가 왜 머리를 자르게 되었는지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는 내 외모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미쳐버렸다는 것을. 확실히 하루 종일 그와 관련 있는 것만을 생각하는 나는 정상이 아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시시하다. 글을 써야 하는 일,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 친구들을 만나 내일이면 기억도 나지 않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하다.  


그도 나와 같을까? 

정말 그럴까? 

 

다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분하다. 기술이 빨리 발전하길 기도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그를 생각한다. 내가 카카오톡 답을 늦게 보내면 그가 안절부절못해할까? 어제 한 섹스를 생각하며 내게 충분한 쾌감을 주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을까? 그래서 다음에 할 때는 훨씬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스쿼트 무게를 늘리고 있을까? 그래야만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그래야만 한다.


늙어서 피부가 자글자글 해진다고 해도 그는 이런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끝까지,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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