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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23. 2020

다양한 경험을 위해서는 아이가
필요하다고?

아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도 필요해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연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미혼이자 비혼 주의자이며 아이가 없는 사람, 결혼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있는 미혼부와 미혼모인 사람, 결혼은 했지만 딩크족이길 원하는 사람, 결혼했는데 아직 아이를 낳을지 말지 조율 중인 사람, 결혼 후 출산해서 아이가 하나인 사람과 둘 이상인 사람 등... 


각자 처한 상황과 조건이 다름에도 사람들은 미혼이라면 결혼을,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둘 이상 낳아야 이상적인 결혼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결혼까지 했다고 해서 종착지에 다다른 것이라 보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야만 완벽한 가정이 형성되고, 한 사람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논리와 주장에 따르면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으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이며, 심지어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면 평생 ‘어른이’ 대접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사회에서 엄연히 제 몫을 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고 제 한 몸만큼은 제대로 돌볼 수 있음에도? 누군가는 결혼 계획은 있지만 아이 계획은 없다고 말하는 내게, “글 쓰는 사람이라면 경험이 풍부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보면서 이것저것 경험해봐야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마음도 이해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그래서 응수했다. 



”단순히 경험을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커리어를 위한 도구로서는 더더욱 낳을 수 없고. 또 아이를 낳으면 경험이 풍부해진다는 말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아이를 낳아야만 글을 다양하게 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을 만한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엔 동의하지 않아. 내가 만약 미혼에 아이가 없다면 없는 대로, 결혼 후 딩크라면 결혼 후 아이가 없는 사람으로서 처지와 상황, 조건, 생각, 마음가짐 등에 대해서 글을 쓰면 되는 게 아닐까? 네가 말하는 일반적인 상황이 결혼 후 출산과 양육을 하는 거라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나 같은 미혼에 비출산자, 결혼 후에도 딩크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만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겪어보지 못한 것에 궁금증을 가지기 마련이잖아. 난 내가 보통 사람들처럼 살지 못한다면 세상의 다양성에 일조하는 거라고 생각해.”라고. 


모두 천편일률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왜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자꾸 본인이 생각하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틀에 가두고 맞추려고 하는 걸까? 이 사람들은 정말로 나를, 더 넓게는 자신과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 건지 의문이다. 하긴, 정말 타인을 존중한다면 무례하게 “글 쓰는 사람이라면 경험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낳는 게 낫지 않아?”라고 말하지도 않을뿐더러 애초에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을 하려고 들지도 않겠지.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 만약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에게 호기심이란 것은 자취를 감췄을 것이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사회적 덕목으로 자리 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나와 같은 모습인데, 애써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언제부턴가 이해와 배려라는 덕목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특히, 개인의 선택인 결혼과 출산, 양육에 정치적 올바름과 범국가적 사업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게다가 “이기적으로 혼자 살려고 하지 말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서 국가에 이바지해야지!”라는 쌍팔년도 대사를 날리며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무려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어디든 다닐 거라 상상했던 2020년이 눈앞에 닥쳐왔는데도 말이다. 


혼자만의 작은 외침으로는 사회 안에 뿌리 깊게 박힌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러한 외침은 결국 “미혼에 애도 안 낳아본 게 뭘 안다고 잘난 척이야?”라는 말과 함께 조롱당할 게 뻔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알게 모르게 억압받고 남몰래 상처 받는 다름을 지향하는 비혼러, 딩크족 등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불끈 쥔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모두의 결정이 존중받을 수 있기를 강력하게 외친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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