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Mar 16. 2020

촌스러운 손편지의 감동에 대하여

백 번의 카톡보다 손으로 눌러쓴 한 문장의 연애편지가 주는 따뜻함


어렸을 때는 손편지를 참 많이도 썼다. 간단하게 한, 두 줄 쓰는 생일 축하 카드에서부터 저 멀리에 사는 사촌에게 쓰는 구구절절한 장문의 편지까지… 입으로 이런저런 말을 조잘대는 것만큼 손으로 한 자씩 써내려 가는 편지를 참 사랑했다. 그래서 20대 초, 중반의 연애 때도 상대방에게 받지 못할지언정 자기만족의 방편으로 손편지를 써서 건넨 적이 많았다. 이에 보답하듯 간간이 상대로부터 손으로 정성스레 눌러쓴 편지를 받기도 했다. 참 이상하게도 카톡으로 백 번을 보고 싶다, 사랑한다 말해도 손편지만큼의 감동은 없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손편지로부터의 감동은 마치 선물 받을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이나 기념일 혹은 어떠한 날도 아닌데 깜짝 선물을 받는 경우가 있다. 선물이라는 것 자체의 의미 덕에 일단 받으면 참 행복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선물을 사기 위해 나를 떠올리며 며칠을 고민하고 이리저리 발품도 팔다가 마침내 딱 맞는 것을 골랐을 때 비로소 마음을 푹 놓았을 그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다가도 특별한 순간을 위해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생각보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구나’ 혹은 ‘잘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새롭게 다가오는 감정들을 마주해야 한다이렇듯 새롭게 떠오르는 마음을 마주할 때, 우리의 감정은 깊어지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도 한다. 



편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글은 말보다 깊은 여운을 줄 때가 많다(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카톡이나 문자와는 다르게 손편지는 한 번 쓰면 연필로 쓰지 않는 이상 틀린 부분, 잘못 쓴 부분을 흔적 없이 지우기 쉽지 않다. 간혹 연필로 쓴 경우에도 너무 꾹꾹 눌러썼다면, 지우면서 흔적이 남거나 종이가 찢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실수하면 처음으로 리셋해서 ‘~에게’부터 다시 써야 한다. 깊게 고민하고 때론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은 덜어내기도 하면서 심사숙고해서 글을 쓴다. 그렇기에 편지를 받으면 써 내려간 사람의 고민의 시간이 온전히 느껴져서 기분이 참 좋다. 행복하다. 


문구점에 가서 편지에 담을 내용과 어울릴 만한 예쁜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사고 이에 어울릴 만한 색깔의 볼펜을 찾아서 ‘OO에게’를 써놓고 어떤 문장으로 편지를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 미소가 지어지며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편지의 내용이 유려하면 유려한 대로, 서툴고 미숙하면 그런대로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온전히 느껴진다. 쉽게 쓰고 쉽게 지울 수 있으며 이제는 전송 후 상대가 읽기 전에 삭제까지 할 수 있는 카톡보다 편지가 소중하고 또 한 번씩 그리운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물론 간혹 ‘아직도 구시대적으로 손으로 편지 쓰는 사람이 있어?’라는 핀잔을 듣긴 하겠지만-. 



얼마 전,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하고자 설 연휴가 지난 후에 본가에 내려갔다. 온 김에 집 청소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지금은 주인 없는, 몇 년 전 독립하기 전까지 내가 쓰던 방에 아직 남아있는 잡동사니를 정리했다. 그러던 중 침대 밑에서 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과거의 지나간 인연들로부터 받은 편지가 담긴 상자였다. 오랜만에 추억에 젖어 상자를 열어보니 지금은 까마득하게 멀어져 버린 시간들이 한 장, 한 장의 편지 속에 가득 담겨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 담긴 편지, 싸우고 화해하면서 건넨 편지, 군대에서 그리워하며 보낸 편지 등… ‘끝이 좋지 않았던 인연들이었을지라도 한때 나에게 이렇게 좋은 추억을 선사해준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티끌만큼의 미움마저도 편지들을 정리하면서 모두 털어버렸다. 


백 마디 말, 백 번의 카톡, 값비싼 선물보다 때론 진심을 담아 서툴게 써내려 간 삐뚤빼뚤한 손편지 한 장이 상대방에겐 큰 행복이자 기쁨 그리고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지난 많은 시간 동안 내 손을 거쳐 간 편지들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도 오늘만큼은 시간을 쪼개어 연인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고생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마음이 담긴 짤막한 카드 한 장이라도 써보기를 감히 바란다. 생각과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짧은 시간조차 내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기에.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웨딩해 X 매라키주얼리 특별 이벤트

생애서 이별을 대하는 몇 가지 자세

'데이트 통장', 결혼할 때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