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Apr 20. 2020

비혼인(人)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마시죠

모지리나 팔푼이라서가 아닌, 선택적 비혼입니다!


비혼인의 마음은 아마도 같은 처지에 있는 비혼인만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타인의 상황과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나를 참 놀라게 한다. 


얼마 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이 사람을 편의상 A라고 하겠다).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이어지던 중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을 선뜻 이야기하게 되었다. 즐겨보는 몇몇 채널들을 소개하니, A는 자신도 해당 채널들의 영상을 즐겨보지는 않지만 여자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해서 몇 번 스치듯 본 적은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A는 이어서 어떤 말을 했고, 난 그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A는 “그런 vlog 영상들은 주로 여자들이 많이 업로드하잖아요. 그런데 영상을 보다 보면, 남자 친구나 남편 없는 여자들이 30대가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래부터 비혼 주의나 독신주의인 것처럼 말하던데… 진짜로 원래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나이는 들어가는데 마땅히 만나는 사람도 없고 또 앞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고… 그래서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애초부터 비혼 주의자나 독신주의자였던 것처럼 꾸며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래야 덜 비참해 보이고 지금 자신의 삶이 당당하게 보일 테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아무래도 내가 앞에 앉아 있는 A를 너무 스스럼없이 대했던 것 같다. 내 기준에서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을 넘어 의심까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A의 태도가 참 놀라웠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비혼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확고한 오해를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제3자인 내가 랜선 너머로만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위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면서까지 그들을 변호하는 것은 오지랖이라고 생각해서 A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비혼인이 주체성 없는 모지리도, 팔푼이도 아닌데 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타인에게 비난을 받고 의심까지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차올랐다. 


비혼인은 어떤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든 상관없이 살아오면서 겪은 자신의 경험과 그에 따른 주관으로 비혼을 선택했을 것이다. 자신 외의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또 다양한 취미 생활과 여가 활동이 생겨나면서 혼자여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 비혼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자료도 있다. 하지만,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단순히 유행이라는 이유로 자기 삶의 모양을 타인의 모양새에 맞추어 변화시키려 하겠는가? 다들 나름의 이유와 동기로써 비혼을 택했을 것이며, 온전히 본인의 선택이라면 그 이유와 동기가 어찌 되었든 간에 제3자인 타인이 왈가왈부하고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가끔 기혼자들 중에 미혼인 사람이나 비혼을 선택한 사람을 깔보는 경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결혼을 안 해봐서 그래. 막상 결혼하고 나면 그래도 든든한 남편에 힘들어도 낳고 보면 귀여운 자식들까지, 내 가정을 이루고 또 지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너? 사회생활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몰라.” 혹은 “지금은 때 되면 유럽 여행이다 동남아 바캉스다 여기저기 여행 떠나고, 몇 달 모아서 명품백 사고 먹고 싶은 거 두 번 생각 안 하고 그냥 사 먹는 게 즐겁고 행복할지 몰라도 나중 되면 너 외롭다? 마흔 넘고 쉰 넘으면 체력도 달리고 다른 친구들 다 자식 보고 손주 볼 나이에 너는 강아지나 키우면서 혼자 늙어가야 하는데 외로울 걸?”이라며 위해주는 척하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비혼 주의자인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을뿐더러, 기혼자로서의 자기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에 프라이드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멋지게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비혼 주의자들에 대한 열등감 또한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걱정해주는 척하며 돌려 까는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혼자는 기혼자대로 선택에 의한 결혼으로써 행복하면 된 것이고, 비혼 주의자는 그 나름대로 선택하고 꾸려나가는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개척한 길을 나아가면 될 일이다. 기혼자라고 해서 인간적으로 더 잘난 것도 아니고, 비혼인()이라고 해서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못난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길을 택했을 뿐이다. ‘틀리다’고 말하지 말고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해보자. 상대가 마냥 고깝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비혼 주의자였던 내가 결혼을 하게 된 이유

안녕하세요. 비혼 지향 주의자입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속 시원하게 대답해드릴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