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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pr 27. 2020

남편과의 집안일 전쟁!

태생적으로 집안일을 못하는 넌 싫지만, 네가 좋아서 난 힘들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결혼은 좋다. 남편은 최수종 정도는 아니지만 자상한 사람이다. 그는 대학 때부터 자취를 했다면서 요리와 집안일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는데, 나는 결혼 전, 이 말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경험하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믿지 말아라, 말은 절대 믿지 말고 오직 행동만을 믿어라.” 


위에 적은 문장은 우리 집 가훈이다. 나의 고조할아버지가 만든 것으로 거실에 크게 걸려있다. 나는 사랑 때문에 핏줄의 저 유언마저 잊어버린 파렴치한 후손이 되었다. 지리산 약수처럼 맑은 남편의 눈동자 때문에 봄날에 피어난 싱그러운 꽃에 앉아있는 앙증맞은 벌의 침처럼 뾰족한 남편의 콧날 때문에 난 오르가슴에 느낄 때처럼 이성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자 그의 집안일 실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난 고조할아버지가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남편은 진짜 집안일을 너무 못한다. 그런데 더 짜증 나는 건 심지어 그가 ‘열심히’ 집안일을 한다는 것이다. 저번 주에 우리는 쿠팡에서 목살 1kg을 주문해서 임성한 드라마를 보며 맛있게 단백질을 보충했다. 자주 활동하는 카페에서 돼지고기가 면역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재택근무를 한다는 사람이 많은데, 나와 남편은 영락없이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먹고 면역력을 길러 당분간은 아프지 않을 작정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남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주방으로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 그리고 고기를 구웠던 불판을 가져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싸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무당이 귀신을 접했을 때 느끼는 그 차가운 기운이라고나 할까? 악몽을 꾸고 난 후,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얼굴을 닦을 때 느끼는 서늘함이라고나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며 두려운 마음에 “그래… 그렇게 해…”라고 말했다. 


샤샤샤… 


부엌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설거지를 시작한 것이다. 


우흥흥…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고무장갑 안에 손을 넣었다. 고무장갑은 그의 손에 꼭 맞았다. 난 갑자기 회사에 있는 한 사람이 남편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을 하려는 열의도 있고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일을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못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착한 심성 때문에 나도 몇 번 웃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을 잘 못 해오면, 화라도 내야 하는데 그 사람은 항상 착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화를 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뭐랄까… 화를 내면 괜히 내가 이상한 사람, 쪼잔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난 밤길에 그의 뒤통수를 야구 방망이로 후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남편의 모습이 영락없이 그 사람과 닮아 있었다. 나의 미래가 완벽하게 예상되었다. 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서 만큼은 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거지 끝~” 



남편은 이렇게 EBS 어린이 프로를 진행하는 진행자처럼 귀여운 소리로 내게 말을 건넬 것이다. 나는 주방에 가서 그가 설거지한 컵, 그릇, 불판 등을 확인해볼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영락없이 고추장 자국, 기름 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그릇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남편의 신체 혹은 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설거지를 하면 무조건, 정말 무조건 기름기나 기타 잔여물들이 남아있다. 한 번은 식혜를 먹으려고 컵을 집었는데 기름기 때문에 컵이 미끄러져 내려 깨뜨린 적도 있었다.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내려고 했으나 그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헉! 자기야, 괜찮아~~??” 


얼굴은 반반하게 잘생겼기 때문에 그의 걱정스러운 눈을 보자마자 나는 화가 싹 사라져 버렸다. 외모는 중요하다.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잔소리를 안 들을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러한 이유로 그에게 화를 내는 대신 모든 집안일을 내가 혼자 하기 시작했다. 혼자 살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인걸, 이라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몸이 너무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남편도 집안일을 함께 하고 싶어 하지만, 그가 이 일에 개입하면 집안일이 더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내가 일을 두 번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의 뇌에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을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법이 없을까?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는 괜찮을까? 남편을 닮아 뇌의 어느 부분이 마비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너무나도 걱정이 된다. 


난 결혼을 하면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은 절대 틀린 게 없다는 점. 그리고 내가 남편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점. 남편의 뇌가 걱정된다. 내일은 점집에 가서 남편의 사주를 좀 물어볼 생각이다. 사주팔자에 근거하여 어떻게 하면 남편을 꼼꼼하게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꿀지 연구해나갈 것이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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