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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25. 2018

게임하는 부부, 특별한 혼수 준비법

같은 취미를 가진 부부의 살아가는 이야기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 전, 많은 로망을 가진다.




따스한 아침 햇살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뜬다던가, 서투른 음식솜씨로 만든 아침밥을 히히덕대며 먹는 꿈. 힘든 일을 끝내고 들어온 하루  마무리에 날 반갑게 맞아주는 내 동반자를 한껏 세게 안아주는 이쁜 그림들. 총각에겐 상상만인 로망 한가득이다.

이런 로망이 맞는 것인지 확인차 또, 취미를 공유하는 신혼 부부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작은 호프집에 들렀다. 살면서 첫 인터뷰라고 한껏 들떠있는 친구는 현재, 결혼 2년 차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총각인 에디터는 결혼 로망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니, 로망은 무슨 연애할 때 한 번도 안 싸웠는데 결혼하고 나서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운다. 샤워하고 몸 제대로 안 닦고 나와서 물 떨어진다고 엄청 혼남.”

웃음 꽃이 핀다. 물론, 당사자만 빼고.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 이런 걸로 엄청 싸운다. 어떡하냐 평생 이러고 살았는데”

그런데 친구는 이렇게 혼나고 싸우는 게 마냥 싫지만은 않은가보다.


“근데 다른 선배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 재밌다. 

제일 친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사는 게 재밌다”

“재미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내 사람과 재미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드라마 같은 내 로망보다 훨씬 로맨틱하게 들렸다. 

이 신혼부부에겐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다. 연애할 때부터 그들이 함께 했던 ‘게임’이 바로 그 연결고리다. 다시금 남정네들의 마음을 뛰게 하는 멋진 로망이 생겼다. 게임을 와이프와 함께 한다고? 세상에! 아침은 시리얼을 먹더라도 그 생활은 무조건 재미있겠다. 듣기만 해도.


에디터: 어제 게임 중 왜 이렇게 일찍 나갔나?

친구: 와이프가 배고프다고 야식 먹자고 해서. 치킨 시켜놨었다.

에디터: 말은 하고 나가야지. 그래도 친구로서 게임보다 소중한 것이 생겼다는 게 느껴져서 뿌듯(?)하다. 역시 유부남!(엄지척)

친구: 그렇다. 게임보다 와이프랑 수다떠는 게 훨씬 재미있다.

에디터: 그건 와이프가 같이 게임 해줘서 그런 거 아닐까?

친구: 맞다. 여자친구일 때부터 여자친구가 게임을 같이 하니까 오히려 함께 하는 게 즐거워 졌다. 니네랑 하면 이제 재미없다.

에디터: 배신자...



“나랑 잘 놀아줘, 나도 너랑 잘 놀아줄게” 


에디터: 혼수준비도 특별하게 했다고 들었는데?

친구: 남들이 주로 사는 가전제품과는 조금 다른 준비를 했다. 와이프와 머리 싸메고 커플 게이밍 컴퓨터를 맞추려고 용산을 들락날락했다. 나는 그래픽카드에 조금 더 관심이 있었는데 여자친구는 그돈으로 더 좋은 게이밍 마우스와 키보드를 맞추자 해서 또 입씨름 좀 했다.

에디터: 결국 어떻게 맞췄나?

친구: 알면서 뭘 묻냐. 당연히 와이프 하고 싶은 데로 맞췄지. 남들은 모를 거다. 10만 원짜리 마우스를 들고 웃고 있는 와이프 표정을. 나는 명품가방 들고 있는 줄 알았다.

친구는 연애 당시,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남들이 “우와~”할만한 좋은 옷 가방 구두 하나 못 해줘서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와이프는?

“돈 많고 차 좋은 남자 되려고 하지 말고, 나랑 잘 놀아주는 남자면 돼. 그럼 나도 너 잘 놀아줄게.”라 했단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난 너에게 관심이 있고, 너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넘어서,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는 서로에 대한 약속이다.

에디터: 알기론 tv를 원래 잘 안 보지 않나?

친구: 맞다. tv보면서 사실 별 감흥을 못 느낀다. 요즘 뉴스는 아침에 핸드폰으로 같이 보면 되고.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tv는 혼수품목에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에디터: 사실 많은 여성분이 게임을 한다. 그런데 게임하는 부부는 낯설긴 하다.

친구: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하는지 잘 알진 못한다. 그런데 이게 우리 부부가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결혼이란 게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냥 행복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마냥 행복했던 적이 있나? 적어도 나는 없었다. 가끔은 엄청 행복하다가, 어느 날은 훌쩍 떠나고 싶을 정도로 우울하다가도 또 별 생각 없어지기도 한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상을 공유하는 게 결혼생활 같다. 

에디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취미’를, 정작 일 때문에 저 뒤편에 미뤄두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즐기고 사니까, ‘재밌다’고 하는 것 같다.

친구: 사실 와이프가 많이 이해해 준 거다. 어떤 꼰대 선배는 우리 면전에 대고 “어떻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냐”고 했었다. 2세 교육에 안 좋고 뭐 어떻고…

에디터: 사실 나도 그 선배 의견에는 동의 못하지만 그게 현재 많은 기성세대의 생각이거나 혹은 전통적인 관념일 것이다. 

친구: 맞다. 그런데 그걸 떠나서, 이건 우리 부부의 취미이다. 게임이 좋아서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친구랑 같이 살면서 낄낄댈 수 있는 많은 일 중 하나이다. 나는 게임을 하든 안 하든, 그 친구와의 일상이 재밌다. 그게 내가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우리 일상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다.

에디터: 솔직히 말해라. 그 연결 고리가 게임이어서 행복한 것도 있지 않나.

친구: 내가 그렇다고 말해버리면 이거 인터뷰 쓸 수 있나? 맞다. 맞아. 사실 너무 고맙다. (큰웃음)



“너와 살기 잘했다”


에디터: 게임을 하면서 생긴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말해달라.

친구: 남들은 다 내가 잘해서 와이프를 시킨 줄 알지만, 와이프가 더 잘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그쪽(에디터)처럼 재능이 없다. 가족끼리 운전연습 못 시켜주듯이, 게임 못 알려준다. 와이프에게  혼난적이 딱 두 번 있었는데 그게 승급전에서 나 때문에 졌을 때와 그 다음날 아침 그게 다시 기억났을 때다.

에디터: 그 기분 안다. 난 최선을 다했는데 내 손가락이 나를 배신하는 그 기분. 근데 손가락이 와이프까지 배신해서 퍽 난감했겠다.

친구: 난감한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는 내가 이렇게 욕먹을 정도로 잘못한 건가 싶더라. 특히 출근하는데 밥 먹다 말고 나갔을 때는 나도 화가 나더라. 그래서 그날 연차 내고 점심부터 연습했다. 욕 안 먹겠다고.

에디터: 사장님이 아시나? 게임하러 휴가 쓴 것?

친구: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장님은 내가 그만두면 남이지만, 난 이 게임 못하면 매일 보는 사람에게 밥도 못 얻어먹게 생겼는데.

에디터: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친구: 그 친구가 퇴근해서 연습하고 있는 나를 보니, 안쓰럽고 미안하고 했는지 옆에 아무 말 없이 와서 앉아 있다가 뽀뽀를 해줬다. 그때 문득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서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게. 그 친구도 나한테 미안하고, 귀엽고 그랬겠지.

에디터: 그래서 휴가 낸 건 안 혼났나?

친구: 다들 해피엔딩을 기대하겠지만, 한 번 더 혼났다. 그래서 내가 “승급전 이기면 용서해줘!”라고 했더니 못 이기는 척 넘어갔다. 다음날 주말이라, 하얗게 불태웠다.

에디터: 결국?

친구: 승급했다. 사실 나보다 와이프가 더 열심히 하더라. 남편 기 살려주겠다고. “많이 늘었네~”하는데 이 여자랑 살기 잘했다 싶더라.

이 남자는 게임을 잘하는 부인이 칭찬해 줘서 행복한게 아니다. 그들이 나눌 이야기 거리가 끊이지 않을 사람과 살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 행복감이 아닐까? 



“오늘도 너와 일상을 살고있다”

에디터: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부부로서, 다른 부부들에게 이야기해준다면?

친구: 게임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다.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가 생긴다는 것은 너무 즐거운 일이다. 그게 영화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있구나’ 느끼면 된다. 그게 행복이다. 사실 더 멋진 말 생각 안 난다.

더 멋진 말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결혼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 아닐까. 누군가와 평생 함께 하기를 결정한다는 것. (물론 친구의 기를 살려주는 칭찬은 하지 않았다.)

에디터: 2세 계획은?

친구: 우리 둘 다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와이프가 예방접종을 받아야 할 것이 있어서 그게 끝나면 조심히 준비해 볼 생각이다. 

에디터: 아기가 태어나면 어쩌면 게임을 못 즐길 수도 있을 텐데.

친구: 당연하지. 그 정도 각오는 하고 계획을 하고 있다. 다만, 나는 남들처럼 와이프가 애 보고 있을 때 게임을 몰래 안 해도 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중에 내가 애 보고 와이프 게임 시켜주면 되니까.

에디터: 나중에 아이가 크면 셋이 같이 즐길 계획이 있나?

친구: 간혹, 와이프랑 이야기하지만, 걔가 우리랑 하고 싶겠나? 와이프랑 둘이 지지고 볶을 거다. 

에디터: 인터뷰에 응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행복해 보여서 친구로서 너무 기분 좋다.


맥주 한잔과 땅콩을 먹으며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고, 친구는 일이 있어 못 온 와이프의 사과를 전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것. 그걸 결정하는 것이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깃거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랑 신부가 평생 나눌 대화일 것이다. 




특별한 결혼 준비, 웨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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