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 코로나, 기-승-전 총선
코로나 사태로 어수선한 상황. 총선을 앞둔 4월은 거기에 더해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 시기였다. 이 두 가지 아젠다는 묘하게 맞물려 속한 모임 어디에서든 진영을 만들어냈다.
필자의 주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염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1월, 중국발 입국자 허용 이슈부터 진단키트 수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화는 코로나로 시작해 기승전 ’ 총선’이었다.
평화롭던 어느 날, 순조롭게 시부모님과 안부 인사를 나누던 남편은 ‘안 뽑는다니까?’ 하며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전화를 끊어?”
“아니, 특정 정당에 투표하라고 하시잖아.”
“서운하셨겠네. 말이라도 그냥 둘러 표현하지.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거 아냐?”
“됐어, 내가 안 뽑겠다는데 왜 그러시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웬일이래. 남편은 유순한 성향이다. 그런 이가 저렇게 신경질을 낼 정도면 어지간히 강요를 당했나 보다 싶었다. 한숨이 나오기도 했지만, 실소도 터져 나왔다. 주변에 ‘특정 정당을 뽑으라’는 회유와 협박은 내 주변에서도 쉽게 일어났으니 말이다.
친구 A는 최근 부모님으로부터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전세 자금 지원도 해주지 않겠다는 엄포를 들었다. 그런 걸 가지고 치사하게 투표권을 강요하느냐며 볼멘소리를 냈었다. "부모님 세대에선 심판의 의미라던데 진짜인가 봐." 체감 상 폐부에 와 닿는 서늘한 기운이 조금씩 들어차기 시작했다.
여당 vs 야당… 강요는 하지 마세요
총선을 앞둔 주말, 우리 부부는 친정아버지께 생신 인사를 드리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너희 두 사람도 이번 투표 잘해야 한다. 어떤 정당이 앞으로 일을 더 잘할지를 두고 보고 선택해야 해.”
세상에, 아버지까지? (참고로 필자의 친가는 사돈댁과 정치 성향이 철저히 다르다.) 진영과 상관없이 상대 ‘심판’에 의의를 두는 이런 투표가 어디 있는가. 우리 지역과 사회를 위한 진정한 일꾼이면 정당에 관계없이 투표하면 되는 것 아닌가? 땀이 삐질, 한순간에 새치 10개가 머리에 솟아난 듯했다.
평화이자 대의를 택하다… 사랑이 우선 아닌가
총선 직전, 시부모님께서 반찬거리를 들러 보내주시며 집에 잠시 들르셨다. 여러 가지 대화가 오가던 중 지역구 의원의 정치활동 이야기와 그리고 총선 이야기가 나오고야 말았다.
“우린 어차피 사전 투표했어요.”
“오 그래? 어디 뽑았어?”
“그걸 왜 말해~ 선거는 비밀주의인 거 몰라?”
또 한 번 잔뜩 볼멘 목소리를 내는 남편을 보며 땀이 났다.
“어머님, 저 그 정당 뽑았어요!”
“어머 그래? 잘했다. 우리는 이제 모두 진정한 한 가족이야~.”
그렇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투표는 누구한테, 어느 정당에 했는지 알 길이 없지 않은가. 가정의 일원으로 인정받기까지 3년 정도 걸린 셈인가. 앞으로도 개인적 신념이 바뀌기 전까지는 둘러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정치 위에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가화만사성을 위한다면 그 정도 거짓말은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