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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19. 2020

30대. 사랑은 멸종하고
정서적 고립 속으로

문득 돌아보니 감정을 이야기하는 주변인이 사라졌다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꾸 든다. 흔히 노년기에 경험하는 정서적 고립감을 30대 중반인 지금부터 느낀다고 해야 할까.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겠지만 말이다. 최근 남자 친구와 이별을 겪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똑같은 사랑인데 나이 먹었다고 주변에서 도덕적 잣대는 왜 이렇게 들이대고 난리야? 나이 먹으니 연애도 마음대로 못하네 옘병...”  


그녀는 요란한 사랑을 기어코 해내는 타입이었다. 안정적이고 오래 뭉근하게 졸이는 사랑보다는 열정적이고 톡톡 튀며 과시하는 사랑을 언제나 선호했다. 단점은 감정 소모가 심해 때론 피로를 호소하고, 연애와 관련된 사건 사고도 많은 편이라는 것이다. 2, 30대 초반 까지만 해도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그녀를 포함한 대부분이 사랑에 몰두했었고 그게 전부인 것만 같았던 시절이었으니까.  


불행하게도 이제는 모두 시집, 장가를 가고 사랑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때다. 한때는 클럽을 누비던 죽순이도 화장을 지운 지 오래이며 성격마저 보수파로 돌아섰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그녀가 사랑에 목메고 가슴 아파하는 것을 한심하게 보는 주변인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일탈'로 치부되는데, 이 친구는 늘 일탈을 생활화한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생겨버린 도덕적 잣대는 높고 그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주변인들이 그녀의 사생활을 뒷담화하며 '똑바로 살지 않는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도 봤다. 여기서 똑바로 산다는 건, 가정을 가지고 평범하게 사는 일을 말하는 거겠지.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신기한 사람이 되어버린 게 나도 놀랍다. 내 주변을 봐도 이제 사랑에 대해서 논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 30대 중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멸종된 공룡과도 같다. 어떨 땐 금기어가 된 것만 같다. 물론 사랑이 현재 진행형인 친구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가 없다. 조용히 만나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거나 최종적으로 헤어졌을 때만 알리는 식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베프가 결혼을 하면서 확 달라졌다고 느껴졌다. 결혼을 기점으로 더 이상 그녀는 연애나 남자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우리가 싱글일 때는 시시콜콜 사소한 것도 서로 공유했지만, 지금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지만 본인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해가 간다. 결혼까지 한 마당에 남자 이야기해봤자 득 될 게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굳이 사랑이나 연애가 아니더라도 요즘 말을 삼가는 게 일상이다. 무엇이든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익숙해졌다. 비즈니스가 아니고서야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고민 상담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그런 것을 드러내는 게 미성숙한 인간이거나, 어른이 덜 됐다는 걸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재단하거나 조절하게 두고 싶지 않다. 부족한 부분을 감춘다고 다 감춰지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나도 감정이 터질 때도 있지만 사상이 이렇게 변했으며, 말을 무게를 너무 잘 알게 되어서도 그렇다. 무엇이든 많이 드러내는 것은 빈틈을 스스로 내어 보이는 것과 같다.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잔뜩 떠든 사생활이 공격 거리로 악용되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것인지에 대한 대화나 오갈 뿐이다. 정말이지 가끔은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앞서 이야기한 친구의 연애 상담을 해주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20대로 돌아간 것 같다. 그리고 돌아서면 가끔 서글프다. 우리 세대는 ‘정서적 고립’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구나 싶어서. 앞선 어른들이 사회적 위치, 평온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을 삼가고 감정을 조절하며 스스로를 단단히 매다 보니 그런 상태까지 이르렀겠지.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던 상대들이 서서히 주변에서 없어졌을 것이다. 가까운 가족과도 감정적인 교류가 어려운 데, 친구와는 갈수록 더 어렵다. 그렇게 저렇게 우리는 평범하게 늙고 있다.  


언제든 속마음을 꺼낼 수 있는 상대를 항상 곁에 두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서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메마른 자가 되지 않도록 쉘터를 하나 정도는 만들어놓겠다고. 이런 다짐까지나 해야 하다니 나이 먹는다는 건 참 어렵다. 나도 이 생이 처음이라, 나이라는 걸 처음 먹어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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